제 목 : 내일의 기억
날 짜 : 2007년 5월 12일 토요일 오후 7시 5분 상영
감 독 : 츠츠미 유키히코
주 연 : 와타나베 켄(사에키), 히구치 카나코(에미코)
감상평: 문숙자
나는 될 수 있으면 내가 본 영화를 솔직하게 평을 쓰기로 했다.
나의 눈물 샘은 주변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유명하다. 조금만 감동해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고, 옆에 누가 있으나 없으나 상황 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눈물 바다는 절정을 이룬다.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나오면서도 나의 느낌의 더듬이는 생각으로 파고드는데 이제 더 많이 익숙해지고 관객의 반응을 꾸준히 비교 살피는데도 익숙해 졌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도록 관객을 유도하는 영화이거나 가슴 속 파문이 도저히 가라앉지 않을 정도의 영화이면, 영화관을 빠져 나오는 관객들의 표정이나 반응을 보면 내 느낌과 거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영화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본 영화는 줄거리가 밋밋하고 그 줄거리의 맛은 싱거워서 나는 솔직히 일본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그랬듯이 이번에 본 일본 영화『내일의 기억』 을 보고 난 이후의 느낌 역시 밍밍하다는 맛을 저어 버릴 수가 없었다. 딸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결혼기념일 선물로 보여 주었기에 보기는 했지만, 너무 밋밋한 구성에 화까지 나기도 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손잡고 나와 본 영화이기도 하고, 남편 역시 너무 싱겁다고 씁쓸해하기 까지 했다.
이미 한국에서 같은 내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영화『내 머릿속의 지우개』와, 드라마『투명인간 최장수』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류오성"의 연기력과 줄거리의 탄탄한 구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죽음을 거절하려는 몸부림은 당연한 본능이라는 것을 기본 밑바탕에 깔았어야 무게감이 실렸을 거라는 생각이다.
관객의 모두는 순정만화 같은 상상을 그리며 영화관을 찾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본이란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와 정서라 생각하자고. 이해를 하기로 했다.
잘 못 해도 굽신굽신 거리고, 잘해도 굽신굽신 거리는 나라.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도 그랬다.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일본인들은 크게 떠들지도 않고 울지를 않는다고 한다는데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일본 내 일부에서는 한국 영화의 정서에 열광을 하고 극성 팬들까지 늘어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정서가 무엇에 목말라 하는지 쯤은, 감독이 센스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너는, 남의 병 발견하는 게 즐겁냐? 병에 걸린 사람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느냐?"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중년의 한 남자(사에키)가 의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의사에게 대든다.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던 세상과 잘 섞여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는데 흥분해서 날뛴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병에 걸린다는 건, 늙는다는 건, 죽는다는 건… 인간의 숙명입니다!"
의사가 사에키를 설득하는 모범 답안 같은 이 대사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라면
어차피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우리네 인생 사가 어디 영화에서처럼 쉽게 접고 포기할 수 있는 일인가.
안 그래도 초반부터 지루했던 영화가 이 때 부터는 더 진부해 진다.
회사 일에 성실하고 평범한 가장의 중년의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이 상실되는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리고, 병을 발견하기 까지의 동기까지는 괜찮았다고 보자.
“당신,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어도 나랑 계속 사랑 할 수 있어? 괜찮을 수 있어?”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가족이니까 힘들어도 가족이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 곁에 언제까지고 함께 있을게요.”
가족이니까…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야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영화 속에서는 녹아들어 있지 않았다.
병보다 무서운 건 자신과의 맹렬한 싸움이어야 하는 그런 처절함의 녹아내림도 없었고,
가족이란 매개체의 설정 역시 미약했다.
연필심이 닳는 것처럼 목숨이 닳아 가는 순간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 들일 줄 아는 자세를 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어제까지의 소중한 삶을 일기장에 추억으로 기록 해 놓는 것만으로, 한 번 가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영영 되돌아 올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감춰야 하는 영화 속 주인공은 너무 젊고 패기 있을 뿐 아니라 푸른 하늘을 희망처럼 이고 마구 누리던 삶을 고분고분 내어 놓기에는 예전과 별 다를 것 없는 평법한 일상의 스토리로 꾸며 나가는 영화는 이미 탄력을 잃어 푸석거리고 있었다.
병의 발견 이후, 사에키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변화는 회사 퇴직이 전부였다. 이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가 권하지 않아도 너무 당연한 결말이다. 아내와 남편의 역할극이 바뀌는 것도 당연한 결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사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긴데 뭘 그렇게 따지느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영화를 찾는 수많은 관객들을 위해 감독과 배우는, 그 당연함 가운데서도 관객이 미처 깨달을 수 없는 뾰족하고 예민한 감성들을 곳 곳에 숨기고 박아 놓는 능력을 발휘 해야만 한다.
감독의 폭 넓은 혜안과 배우의 명 연기가 찰떡 궁합을 이루고, 더불어 관객은 소풍 나온 아이들이 보물찾기를 찾아 냈을 때처럼 예리한 감성에 짜릿한 전류를 느낄 때. 그 때 서야 비로소...
아!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었구나! 라고... 말 할 수 있다.
무겁게라도 앓고 치유 되는 병이 아닌, 아직은 할 일이 많은 아까운 나이에 죽음으로 삶을 마침표를 찍어야만 하는 투병생활을 다루는 영화 치고는 절절함이 턱없이도 부족한 영화였다.
두 어 번의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었지만 눈물 샘이 크게 발달한 나를 자극하지 못 한 영화 『"내일의 기억』
죽음의 병을 다룬 영화가 분명 평범한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현대의 사회에서는 병이라는 것이 나를 방문하는 일이 아니면 그저 남의 일인 양, 혀 몇 번 끌끌 거려주는 것 쯤으로 넘어가도 누가 뭐라 할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서 이런 평범(?)한 내용 설정으로 관객들 앞에 내어 놓을 거라면, 눈물 쏙 빠지게 감동적이거나, 아니면 좀 더 치밀한 구성을 갖춘 사건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기대하는 건 관객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말 해서.
너무 이쁜 것만 골라서, 너무 고운 것만 골라서, 너무 아름다운 것만을 골라서 잔치 상을 차려놓듯이 필요 이상의 친절한 영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란 병은, 아무리 현모양처인 헌신적인 아내 혼자의 힘으로 감당해 내기에는 이렇게 아름답게 치장할 병이 아니라는 현실감과 동떨어진 내용의 설정에서 부터 잘 못 되어진 것이다.
이미, [마지막 사무라이]와 [게이샤의 추억]에서 유명세를 탄 훌륭한 배우(사에키/ 와타나베 켄)의 연기력은 인정을 받은 바이지만, 이 보다도 훨씬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임이 확실한데도 너무 작은 무대를 만들어 준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죽음과 맞서 싸우는 나약한 인간은 맹수와도 같은 몸부림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원망과 미움과 사랑이 엇박자처럼 엇갈리면서도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한계의 밑바닥을 기면서 박박 긁어내어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얼마든지 용서를 할 수 있는…
그런 용서 앞에서도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은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군다나 60억 인구 중에서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 평생을 살다 죽음이 갈라놓는 사랑이야기는
잔인하도록 슬프지 않은 영화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것이 어야 한다.
눈물 겹도록 아름답다 말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것이 어야 한다.
어설픈 신파극 조의 쉬운 러브스토리로는 관객은 호응은 그저 미지근 할 것이다.
"리에가 가출 해서 나 혼자서 힘들어 할 때 당신은 언제나 밖에서 술 마시고 즐기고 있었어요. 리에가 시험에 떨어져 리에와 내가 밤새도록 울 때 당신은 그 때도 여자들과 술 마시고 놀고 있었어요. 리에가 아침까지 울고서 눈이 퉁퉁 부어 나왔을 때 당신은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자고 있었다더군요. 리에와 내가 힘들 때 당신은 밖에서만 있었어요. 당신은 언제나... 아무 것도... 모르고... "
이 영화에서... 남편인 사에키의 병수발을 들던 중.
에미코의 절실함이 가장 절절하게 딱 한 번묘사 되었던 이 대사는 드라마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어느 집 부부싸움에나 들어갈 만한 대사만 보더라도 전체적인 줄거리의 밋밋함이 심금을 울릴 만큼 짜임새가 튼실하지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남을 만 하다.
그러니 나는, 2006년 일본의 대표적인 감동 영화로 내놓은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의 극으로 치닫는 연기로 뽑기도 미흡하거니와 그리 감동적인 영화로 평하지를 못 하겠다.
두 번의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의 변화는 있었지만 영화관 내에서 주루룩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훌쩍훌쩍거리는 소리가 나지를 않았다. 충분히 펑펑 눈물을 흘릴만하다는 영화 평을 한 홍보에 실망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 차라리 떠오르는 명대사 하나 있다.
주인공이 아닌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인 산 속에서의 장면에서다.
사에키의 기억이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가운데서 현실인지 착각인지도 불분명한 채 정체성이 불투명한 옛날 사에키가 도자기를 배울 때도 노인이었던, 현실 세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 노인이 한 말이다.
“사람들은 날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난 절대 안 미쳤어! 누가 그래! 그런 건 내가 정해!”
현실에 처해진 상황에서 나비효과가 충분히 묻어나는 장면이다. 사에키 정신 속에 숨어있던 환상 속의 노인이 말을 한 건지에 초점을 맞춰 볼 만 할 때 긴장이 되었다.
사에키가 처해진 자신의 입장에 설명하려는 대사인 것 같아 내심 마음에 와 닿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날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난 절대 안 미쳤어! 누가 그래! 그런 건 내가 정해!"
어쩌면 이 말이...
사에키가 소유하고 있던 어제까지의 기억이 모두 소진되어버리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화를 보고 있는 내 몸의 피가 차가워 지는 것 같았다.
노인이 세상을 향해 들어라고 크게 외치는 순간,
미친 듯이 떠들어 대는 노인의 말을 듣는 사에키는 어제까지의 사에키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리라는 것을 나는 감지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 까지의 사랑과 미움까지 모든 것을 망각해 버리는 순간이다.
정말 소름 돋아나는 망각이다.
그 후...
행방불명 된 사에키를 찾아나선 에미코를 산 속에서 만나는데
에미코를 전혀 알아보지 못 하는 사에키.
처음 보는 여인에게 부끄럽게 자신을 소개하는 사에키.
낯설은 익숙함을 소멸당했을 때 지금까지의 익숙함은 이제 익숙함이 아니라,
낯익은 새로움으로 내일의 기억을 기약하는 순간이다.
아! 에미코의 가슴 아린 상처로만 남은 채 영화가 종결되려는 순간이다.
(처음 영화가 시작 될 때의 프롤로그의 장면에서는 에미코의 추억일 뿐, 사에키에게 새로운 기억과 지나간 추억은 모두 다 부질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에키와 에미코가 산 속에서의 마지막 장면까지가 사에키의 어제까지의 기억이고 삶이다. 영화 처음 장면의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에키의 모습은 삶의 의미도 추억의 의미도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 어제까지의 기억은 소중한 추억으로 접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영화는 설명해 준다.
[내일의 기억]이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영화 제목을 설명해 주는 부분으로
영화의 막을 내리는 감독의 의도가 신선하게 내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아
마지막 엔딩 부분만은 마음에 들어서 다행인 영화『내일의 기억』
일본이 한국에 당당하게 내놓은 영화『내일의 기억』
일본의 문화나 정서에 맞게 만들었다면 어쩔 수는 없다지만, 세계 속에 영화를 내어 놓으려면 인간 내면 속에서 삶과 죽음이 맹렬하게 부딪쳐서 떨어져 나오는 파편들이 관객들의 마음 속에 깊이 박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차라리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이 한숨을 토해 낼 때 그 상처가 빠져나와 곳곳에 뿌려지기를 바란다. 이런 저런 아쉬운 생각이 일본 영화를 접 할 때마다 드는 데 어쩔 수가 없다.
죽음 앞에 담담함으로 대처하는 감동적인 영화로 내세울 만 했다면 대중이 생각해도 담담할 정도의 사건과 무게가 막중하지가 않았고 치밀하지가 않았다.고 다시 한 번 나는 거침없이 말한다.
그러나, 수채화 같은 가슴을 아리게 만든 마지막 엔딩 부분의 각본 처리 만큼은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의 상상력은 충분히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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