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날 짜 : 2007년 3월 30일
감 독 : 톰 튀크베어
주 연 : 벤위쇼(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더스틴호프만(주세페 발디니)
감상평 : 문숙자
영혼을 뒤흔드는 단 하나의 향기가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내게 영혼을 뒤 흔들 수 있는 마법의 도구 하나 있다면...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왕도 무릎을 꿇을 수 있게 하고
내가 신이 될 수가 있다면...
이것은, 나를 방어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공격하는 무기로 이용 될 것이다. 라고 단정 짓고 싶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이라는 한 개의 덩어리 안에
잘게 부서진 세상 떠도는 악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다.
태어나기를 애초부터 외롭게 태어난 사람
죽을 때까지 가슴 시리도록 외롭게 살아야 할 운명의 탯줄을 감고 태어난 사람
이런 외로운 사람에게 늘 끼고 살았던 악취가 아닌
기분 놓은 향기를 지닌 운명적인 여인을 만난 것도 더 처절하게 외롭기 위해서였을까.
스치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먼 데서 마주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세상 냄새는 악취가 전부라는 것으로 알고 살다
난생 처음 맡는 향기는 마치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 주는 구세주와도 같았을 거라는...
흡. 흡.
마법에 걸린듯이
흡. 흡.
향기를 마시면서... 음미하면서...
두건 속에 아무렇게나 쑤셔넣고 남은 머리카락에서
머리카락이 없는 곱게 드러난 목선에서
달싹거리며 움직이는 어깨에서
봉긋하게 올라온 솜털 보송한 가슴과 가슴사이에서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
하늘하늘 움직이는 향기에 이끌려 가는 이 외로운 남자를 미워할 수 가 없는 것을 보니
영화를 다 보기도 전에 나도 향수에 중독이라도 되려는 듯 영화에 몰두한다.
썩은 악취가 풍기는 파리 시내에서
기분 좋은 향기를 지닌 이 여인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그루누이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덜 외로웠을까.
아니, 만났더라도...이 여인이 죽지만 않았더라도
이 외로운 남자의 집착은 위험하지가 않았으리라. 는 생각도 잠시 해 본다.
한 순 간, 어이없게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루누이.
순간, 순간적으로...
나는 이 순간이라는 말을 무척이나 무서워 한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그만...!
이런 말들로 뒤를 변명하는 사람들을 보면...
뭐든 한 순간만 잘 넘기면 순탄한 삶을 살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실수가 삶을 시궁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순간"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무섭다.
이런 한 순간에 생각을 바꿔놓은
그루누이의 외로움과 고독이 응집된 집착은...어디까지인가.
처음으로 만난 향기로운 여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집착만큼이나
위험한 욕망의 덩어리를 가슴에 담으면 담을 수록 터질 것 같은 외로움과의 투쟁은
또 얼마나 치열했을까.
뭐든 적당히 미쳐야 한다.
너무 빠져들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적당히 빠져나올 줄 아는 법도 익혀야 편안하게 세상에서 섞여질 것이다.
그러자면, 적당히 자신의 삶을 비열속에 뒤섞을 줄도 알아야 하고, 적당히...
이 적당히...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만이 알게 남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근한 것을 숨길 줄 아는 얍삽함이 필요할 것이다.
자연으로 나가지 않고도
가만히 앉아서 자연을 노래할 줄 아는 천재들을 나는 부러워 했던 적도 있다.
공식이라는 절차를 무시하고도 기계보다도 더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천재들의 숨겨진 외로움을
그루누이의 모습에서 보여주는 듯 하다.
- 향기의 고장 그라스.
이렇게 많은 꽃잎들로... 향기속에 묻혀사는 그라스 사람들.
- 벤위쇼(그루누이)의 표정 하나하나가 압권이었다.
- 삐딱한 고개, 직선적인 시선. 묘한 표정.
표정이 없는 무표정에서도
별 대사 없이도
별 의상의 도움 없이도
벤위쇼(그루누이)의 표정 몸 짓에서 향기에 대한 집착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아리따운 처녀만을 골라 향기를 수집하는 그루누이.
거리 뒷 골목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여인의 향기를 닮은 여인을
그라스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
누가 봐도 아리따운 한 여인의 만남이
그렇고 그런 흔한 레파토리의 사랑이라는 관심이 돌려지는 듯 했으나...
관중의 기대와는 달리 반전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기대와는 달리 반전으로 관중을 칠 때는 더욱더 긴장한다.
"왜 내 딸을 죽였느냐!"
고 묻는 말에
"그냥 그 여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냥... 이라니!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냥이라니...
길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만난 여자도 아닌 첫 느낌 첫 눈에 홀딱 반한 여자를 �아다닌 이유가...
그렇게 마지막으로 손에 넣은 여자를...
그 여자의 향기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재료일 수 밖에 없었다니...
얼마나 소름 끼치는 반전인가.
아마도 이 말이
책을 읽은 독자는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루누이를 정신병자로 몰고 간 원인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수많은 이성을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맘껏 마음을 휘저어놓고도
너무나도 쉽게 이별을 선택하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 맡기듯이 그렇게 버리는 사랑.
허무하게 끝나버린,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랑이 이 거리엔 얼마나 뒹굴고 다니는가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보러나온 군중속으로 향기를 날리는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벤위쇼)
쉽게 버려지고 잊혀진 사랑의 몸부림으로 미움과 증오로 상대를 대하는 가증스럽게 가장한 가운데
정말로 마법같은 향기는 한 순간 반짝하는 공기청정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보여주는
관중들은 이성을 유혹하는 향기에 취한 마법에 걸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에 바쁘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남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는 그루누이는
군중들의 행위를 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욕정이 꿈틀거림과 동시에
파리의 여인을 떠 올린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향기를 수집했던 자신의 믿지못할 행위가
사랑을 갈구하는 행위였다는 것 자체가 그루누이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성을 유혹하는 향기가 사라지고 마법에 풀린 듯이 다시 정신이 차려졌을 땐,
또 다시 부끄럽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을 외면한 채
하나 둘 자리를 뜨는...
너무나도 세상 돌고도는 이치와 똑같지 않은가... 말이다.
- 영화에서의 마지막 장 바티스 그루누이의 모습.
새들도 죽기 위해서는 땅으로 내려온다는데
본능적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나기 위하여
생선 썩는 냄새와 쥐똥 썩는 악취가 뒹구는 자신이 태어난 처음의 거리로 온다.
죽기 위하여...
누가, 이 우울하고 소심한 남자를 정신병자라 욕 할 자 있나.
그루누이를 낳자마자 버려진 생선내장 속에 죽어라고 내던진 엄마.
버려진 사생아를 키워준 데 대한 아무런 대가가 없자,
그루누이를 가죽공장에 팔아버린 유모.
한 때 향수로 떼 돈을 번 쥬세페 발디니에게 그루누이를 팔아버린
가죽공장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남자.
그루누이에게 향수 만드는 방법을 일 천개를 전수 받는 대가로 그라스로 가는 추천서를 써 준
향수공장 주인님 쥬세페 발디니.
거의 운명적인 만남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는 냄새가 아닌 향기나는 여인의 죽음.
그루누이가 태어나고부터
그루누이를 버린 사람들은 우연히도 예고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그루누이를 둘러싼 죽음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 사회를 떠도는 인간에 대한 혐오와 비도덕성을 한 꺼번에 고발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생명을 갖고 있는 것들은 뭐든 외롭기 마련이다.
하물며 생각을 할 줄 알고 언어를 구술 할 줄 아는 인간은 얼마나 외롭겠는가.
안 그래도 외로운 인간을 아주 처절하도록 외롭게 만들어놓고
정신병자로 뒤집어 씌우는 고발적인 의도일 수 밖에 없다.
이 외로운 남자 그루누이에게 있어 생의 목표는 단 한가지 일 수밖에 없었다. 는 것을 짐작이나 할까.
세상에 태어나, 본 것이라고는... 느낀 것이라고는...
달콤한 땀 냄새가 아닌 오래된 시큼한 땀 냄새에 절은 곰팡내, 시체 썩는 냄새,
쌓이고 쌓인 쥐똥이 썩는 냄새, 썩은 나무 냄새,
죽은 동물들의 내장썩는 냄새와 섞여서 살아야 하는 것만이 그루누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대적으로,
일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악취속에서 후각이 마비된 채 살아야 했으나
그루누이의 후각은 불행히도 마비되지가 않았다.
남들과 같지 않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 만큼 불행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런 불행 속에서
작은 냄새까지도 찾아내는 능력은 거의 동물과도 흡사한 그루누이는 섬뜩할 정도였다.
눈 앞에서 멀리 사라진 사람의 체취마저도 동물적인 후각으로 쫓는 사냥개의 모습이었다.
나는, 향기는 좋아하나, 향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가공으로 만들어진 냄새로 다른 뭇 사람들에 관심을 끄는 것은
진실성이 결여 되어 보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가공된 향기는 어김없이 두통이 불러들이니
내게 있어서는 향기가 아니라 내음도 아닌 냄새로밖에 여겨지기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향수를 내 손으로 직접 사 본 일은 없는 것 같다.
또 선물을 받았더라도 오롯이 장식품으로만 놓여져 있을 뿐이다.
아마도 내가 향수를 좋아했다거나,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었더라면...
향수라는 영화에 절대 공감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었을 것이나,
오히려, 향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하게까지 만드는 영화로 기억 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던져주는 메세지는 강한 느낌으로 와 닿았다.
-애초부터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책을 읽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다.
이제 그루누이의 감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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