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오만과 편견
원 작 : 제인 오스틴
감 독 : 조 라이트
주 연 :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맥파든
감 상 : 2006년 3월 31일
감상평 : 문숙자
결혼으로 성공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예견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해진 사랑이다. 그렇게 정해진 운명이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만나게 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
자그마한 롱번 마을의 베넷가(家)에서 제인, 엘리자벳(리지), 키티, 메어리, 리디아. 다섯 딸들이 사랑을 주제로 그려가는 낭만주의적 청춘 스케치라 해도 되겠다.
연인들의 달콤한 사랑이 시작 될 때 결혼으로 이어지는 첫째 조건은 오로지 사랑뿐이라고 지향하는 자존심이 강한 "리지"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 없는 "다아시"와의 가슴 설레는 사랑이 영국의 전원에서 펼쳐진다.
미스터 베넷은 약간의 풍자적인 감정을 지닌 아버지이고, 미세스 베넷은 빈약한 이해력과 지식수준이 낮고 변덕스러운 어머니다. 딸들을 재력가와 결혼을 시키려는 것만이 평생 사업의 목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비정한 어머니로 봐도 된다.
전혀 의미가 없는 결혼을 하면서도‘이런 사랑도, 아름다운 거야!’라고 우기는 어머니와 철부지 세 딸은,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랑을 마치 깨진 그릇처럼 타락시켜 버리는듯하여 약간은 아쉬웠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으니, 작가의 감정은 베넷가의 집안을 가난에서 벗겨내야 한다는 상상력이 동원되었으리라고 본다. 여성의 자아 완성은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낭만주의로 상상력을 펼치는 것 또한 작가의 마음이므로.
첫째 딸 제인은 누가 봐도 예쁘고 착한 결혼 적령기를 맞은 아름다운 아가씨다.
자신의 속마음을 전달하는 표현력이 부족한 제인은 도시에서 이사 온 얌전하고 자상한 재력가의 청년인 빙리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빙리는 제인가족의 저속한 품행이 마음에 걸려 롱번 마을을 떠나고 제인은 사랑의 몸살을 앓은 후에, 동생 리지의 도움으로 빙리와 결혼을 하게 된다.
막내딸 리디아와 셋째 딸 키티는 결코 성실하지 못 한 사랑을 운 좋게 얻어 어이없는 결혼을 하자 재물과 가문에 욕심이 많은 미세스 베넷은 기쁨을 감추지 못 한다. 딸들을 이용해 결혼을 구걸하여 배를 채우려는 거지 행세를 시킨 것이라 봐도 되겠다.
가난한 부모에게 효를 다하기 위해 자식이 맘에도 없는 결혼을 하는, 이유가 조금은 타당한 희생정신은 고전적인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간혹 볼 수는 있었지만, “조 라이트”감독이 만들어 낸 오만과 편견은 저속하고 무능한 가족들을 코믹함과 발랄함을 감상하는 관객으로서 충실할 수 있다면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반면, 가난하지만 자존심 강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당차고 영리하기까지 한 둘째 딸 리지와, 지나치게 과묵함으로 인하여 가슴 속에 품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다아시의 사이를 가로막는 오만과 편견의 심리전 속에서도 사랑의 감정은 틈만 있으면 강한 움을 틔운다. 다아시와 연류 된 루머와 좋지 않은 첫인상 때문에 리지는 다아시를 바라보는 편견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지만 사랑이 오가는 만남과 이별은 언제 봐도 애틋하기 그지없다. 다아시의 오만함이 눈에 거슬러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랑을 떠나보내기만 하는 리지는 그럼 겸손하기만 했나? 첫인상만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은 늘 뒷전으로 미루는 리지의 편견은 얼마나 무례한 오만이었던가. 그래도 이런 자존심을 내 세운 오만을 한껏 부린 후에 리지의 편견은 비로소 사랑으로 바뀐다.
“사랑을 할 수 있는 나이엔 연애도 해 보고 실연도 당해봐야 한다. 리지, 너도 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
현실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내보다 뛰어난 미스터 베넷이 딸들을 지켜보며 한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실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있다. 누구나 나이에 맞는 실수를 해야 하고 그 실수를 어떻게든 겪어야 하며, 또한 슬기롭게 이겨 내야만이 제대로 된 나이의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드라마 [궁]에서 나온 대사와 미스터 베넷의 말은 같은 맥락으로 들려진다. 그렇게 해서 무르익은 사랑이 행복한 결혼 생활의 완성도는 한결 높아 질 것처럼.
로맨스의 영화가 거의 그렇듯이 내용에는 큰 치중이 없었다. 요즘 EBS에서 제니퍼 엘리와 콜린 퍼스 주연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배경과 배우들의 이미지가 조금 무거운 듯하지만, 내가 감상한 영화 [오만과 편견]은 배우들의 생기발랄함과 배경의 조화는 시대가 흐른 만큼 더욱 세련된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다.
아름답게 펼쳐진 영국의 높푸른 언덕과 크고 웅장한 나무들이 즐비한 전원을 감상하기에 좋았으며, 장면마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뛰어나게 좋았다.
리지와 다아시, 빙리와 제인이 진실의 씨앗으로 성실하게 농사지은 달콤새콤한 사랑의 열매 를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은, 요즈음의 신세대로서는 너무나 식상하게 받아들여지는 않을까 하는 관객들의 평 또한, 시대가 주는 우울이라는 감성과 영국이라는 그 나라의 문화적인 차이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쉬울 것 같다.
“다아시, 내가 제일 행복할 때만 미세스 다아시라고 불러주세요!”
호숫가에 나란히 앉아 리지가 다아시를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대사다.
단 한 줄의 이 대사를 행복지침서 중 한 페이지에 끼어 넣는 것으로 나는 만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