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항아리.../시시한 수필 -

[문선정]오늘, 앞으로 남은 인생 중에서 첫 날. 오늘 나는...

문선정 2008. 6. 28. 02:35

 

 - 오늘, 앞으로 남은 인생 중에서 첫 날, 오늘 나는...



문선정


 

 

6개월이 흘렀다. 벌써...

하루 세 알씩 약을 먹는 일. 종일 시달려야 하는 약 부작용과의 싸움이 어떤 때는 멈추는듯 하다도 어느 날은 느닷없이 심해져서 갇혀지내는 것 같은 생활의 연속이다. 문득문득 이런 생활을 평생을 해야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정신을 조여오기도 하지만 이따위 생각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니지, 아니지... 곧 낫겠지. 그럼…….' 이런 생각을 하며 희망 한 줌 움켜잡아 꿀꺽 삼킨다.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생각은 내가 버릴 수도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게 조절을 해야 한다.

 

지난 12월 말이 생각없이 지나고 새해 첫 달에 닥친 어두움은 내 일생 최고의 불행이었다.

큰 병을 받아들이는 일이 남의 일인 줄로만 여겼던 것이 내 문제의 현실로 맞닥뜨렸을 때의 먹먹함으로 백혈병이라는 병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숨어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영화 라스트 콘서트와 러브스토리에서 보여주었던 고통스러운 장면장면 떠오르면서, 그렇구나. 내 생이 여기까지구나. 라는 온통 뒤죽박죽인 두려움이 내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가장 두려웠던 골수검사를 하면서, 이럴 때 신앙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처음으로 드는 순간순간마다 가장 든든한 줄 알면서도 20여년을 외면했던 하나님에게 매달리고 싶은 심정을 감추어야 했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결혼 이후, 교회에 나가는 일이 없었던 것은 그동안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과 시댁과의 종교적인 갈등으로 고민했던 나는 병이 찾아 든 이 순간, 아이구 하나님! 하고 외치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것에 죄책감으로 망설여야 했다.

염치, 그래 염치가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오빠가 와서 산책하는 척 하면서 교회에 데리고 나가려고 했을 때도 끝내 거부했었다. 그 후, 일본에 사는 언니와 형부가 급하게 와서 목사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송기환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서 나는 목사님에게 주절주절 쓸데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라는 식으로... 그저 내 인생 내가 알아서 마무리 할 거라는 식으로... 이런 내게 "긍정의 힘"을 실어주는 안수기도를 해 주실 때는 좌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다른 누구보다도 목사라는 직책을 가진 분의 말씀은 참으로 위대했다.

위안이라기보다는 아주 큰 위력을 발휘하고도 남았다. 죽는다는 생각이 내 몸을 누르고 영혼을 짓누를 때 다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들게 한 송기환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후로, 내 사랑하는 남편, 내 사랑하는 아들 딸이 그 때서야 차츰차츰 눈에 들어왔다. 다른 그 무엇도 다 필요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접을 수 있었다. 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내 남편에게 아내가 필요 할 때 든든하게 옆에 있어 주고 싶고, 내 아이들이 엄마를 찾을 때 항상 있어주는 그런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마음만이 간절했다.

가족 사진에서 내가 없어지는 상상의 두려움은 슬픔 그 이상이었으며 가족들에게도 나 때문에 이런 슬픔을 안겨주기는 더욱 싫었다. 항암약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온 몸이 조여오는 듯한 고통으로 잠 못 이룰 때  20여년 만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그치지 않는 울음을 삼키며 기도를 거듭 할 수록 두려움과 불안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가라앉는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찾아드는 마음의 평온함...  

목사님의 손을 내 머리에 얹으신 채 기도해 주시는 긍정의 힘. 죽을 수밖에 없구나. 이제 죽어야 되는 거구나 라는 부정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작은 믿음라는 것이 내 안에서 이제서야 싹을 틔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 백혈병 강좌 세미나에 참석을 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믿기 싫은 현실에 풀이 죽어야 했지만, 그래도 오래 전에 내 청춘의 발자국이 찍혀있는 명동거리를 걸어 올 때 또 한 번 감사했다.

나는 오늘도 살아있어 이 곳에 머물을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세상 어디를 보아도 아름다운 것 투성이다. 추하고 더러운 것 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살아있어 이런 아름다움을 느끼고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순간순간 충분히 행복하고 감동스러울 수 있다. 여러 사람과 웃음을 교환할 수 있는 오늘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웃음이 보약이라는 말. 기도가 마음의 평안을 준다는 믿음으로, 나 오늘도 이 순간 살아있어 푸른 하늘 아래 서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가 말이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오늘 이돈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오늘도 살아있으니 오늘이 생일이다. 매일매일 생일이다.

선생님의 이 말씀이 참 마음에 든다.

오늘은, 앞으로 남은 인생 중에서 첫 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맞이하자.

오늘 첫 날... 나는 건강하다. 나는 행복하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