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은 꿈이라고 / 문숙자
한동안 울지 않았었는데...
그녀와 함께 해 온 지난 날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속에서 씨앗 하나가 싸하니 울려오는 거였다.
잔잔한 울림은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면서 눈에서 짠물을 짜내는 거였다.
나는 그녀에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씩씩하게 말을 했고
다행히 그녀는 긴 통화가 끝날때까지 내 눈물을 눈치채지 못했다.
학창시절부터 시작해서 유난히도 각별한 사이로 처녀시절까지를 함께 보냈던 친구 명옥이.
우리는 전화통화를 할 적마다
산나물처럼 야들거리는 꿈을 가슴에 잔득 안고 살았던
지금은 아득해진 그 시절을 더듬는데 양념을 치곤 한다.
지나간 시절은 모두 꿈만 같은 것을...
꿈같은 시절...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서로 삐쳐 절교쪽지를 내던지며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매몰차기도 했었고
둘은 강의가 끝나자마자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손을 꼭 잡고는 여기 저기 쏘다니기를 좋아해서
산이며, 들판이며, 강이며, 바다를 향해 달리곤 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접어서 손에 들고 온 몸으로 비맞이를 했었고
동대문에서 종로까지, 대학로에서 돈암동까지, 청량리에서 미아리까지
낮이나 밤이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기도 하고
토닥토닥 정겨웁던 시절을 가끔씩 꺼내보는 재미로 전화 통화를 한다.
나에겐,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오직 그녀 뿐이다.
내게 비오는 날의 특별한 추억이란
그녀와 함께 샌들을 신은 발로 빗물 흐르는 길에다 빗방울을 만들어냈고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빗방울이 튕겨지는 모습에
덩달아 우리의 웃음마저도 까르르 튕겨 비와 섞이었던 추억 뿐이다.
그 이후 계절과는 상관 없이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련해진 그 시절이 빗물처럼 가슴에 고이곤 하는데 빙그레 나오는 웃음은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다.
내게 빗방울의 추억을 만들어준 그녀는,
내가 갓 스물이 되면서 만난 남편과 나의 결혼에도 익살스런 방해꾼이자 가장 큰 공로자였던 그녀이기도 했다.
처녀시절부터 결혼 이후까지도 직업도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길을 가고 있음에 할 말이 더욱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 해 두 세 번 정도의 만남만이 있었을 뿐.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안부 전화만으로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는
오래 묵은 돈독한 친구이다.
목소리가 예쁜 그녀는 직장생활에 가정생활에서 겪어내는 그녀의 이야기속에서도
어김없이 내 걱정을 해 주던 오늘 아침엔
이제는 가물가물해 질 것 같은 그녀와 함께 했던 지난 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나는 눈물이 나서 그녀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를 못했다.
문득, 내 지나간 시절은 모두가 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꿈을 꾼 것이다.
살며, 나이가 들 수록 가지각색의 꿈을 꾸었던 시절을 밥처럼 간식처럼 그리워 하고
이런 그리움을 베어 먹으며 오늘도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일 게다.
- 나. 명옥이 스물 두 살 때 인 것 같다.-
조금 전에, 그녀에게서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너, 그거 아니? 너란 친구가 있어 얼마나 많은 힘이 되고 있는지. 고맙다! 오래오래 좋은 친구 하자]
[한동안 울지 않았었는데 너랑 통화하면서 찔끔거렸다. 가끔씩 너랑 다니던 생각을 자주 하거든. ㅎㅎ 우리 처녀시절을 각별하게 보냈잖니..]
이 밤, 친구...가. 보고 싶다!
오늘 밤은 그녀와 함께 밤을 꼴딱 새면서 이불속에서 깔깔거리는 꿈을 꾸고 싶다.
옛날처럼... Gheorghe Zamf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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