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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정]미루나무를 찾아서

문선정 2007. 5. 10. 01:26

 

 

 

미루나무를 찾아서 


문선정

 

 

 

  나 오늘도,

 

  이 미루나무 한 그루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미루나무.

 

  홀로 있어 더 쓸쓸해 보이는 미루나무가 참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미루나무를 만나기 위해 돌아다닌 시간들이 뿌듯함으로 밀려오는 순간이다.

 

 

  나란 사람은 참 뾰족한 사람이다.

  한동안을 날카로운 뾰족함으로 여기 저기 많이도 찔러댔던... 나.

  세상이 온통 동화처럼 이쁘게만 보였던 나에게 거친 가시 하나 생기고부터 였다.

  줄기를 뻗으며 수많은 가시가 돋았던 가슴에 어느 것도 들여놓을 수 없었던 몇 년이었다.

 

  호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위로가 되고도 남을 것들 조차도

  가난으로 찌들어 가는 내 가슴에 그 어느 것도 들여놓을 수 없었던...

  째깍째깍 째깍째깍... 시간... 시간들을 보내면서...

  수없이 나를 옭아매는 외로움... 쓸쓸함들을 무엇으로 감당했었는지.

 

  시간이 흐르고 날이 갈 수록 나는 차가운 쓸쓸함에 중독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런 중독이 그리 싫지만도 않았던 나날이었다.

 

  요즘 들어 다시 내 곁을 스치는 내 주위로 흐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낯익은 아름다움이지만 다시 새로움으로 움트는 내 심장이 살아 움직인다.  

  살아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좋은 말만을 건네고 싶다.

  간신히 숨만 쉬고 지내는 줄 만 알았던 내 심장이 움찔움찔 다시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기웃거리는 설레임에 나는 삶의 희열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달뜬 가슴에 나는 요즘 너무 기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유년시절 내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미루나무가 줄을 서 있었다.

  집에서의 시간을 많이 보냈던 어린 나는 주욱 줄을 서 있는 미루나무 사이사이를 오가면서 놀았다.

  친구 없는 나에게 큰 친구가 되어준 미루나무 귀에다 작은 내 입술을 바짝 갖다 대고 내 이름을 알려주기도 하고, 등을 기대어 하늘을 우러르기도 하고, 팔을 뻗어 안아주기도 하고 온전히 나의 모든 것을 맡긴 채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그런 친구같은 미루나무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추억이 있는 미루나무가 한 두 달 전부터 피폐했던 내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내겐 너무 착한 미루나무로 기억되는 날들이 아슴아슴 들어오는 날 부터 나는 정신없이 시골 농로 길을 헤매고 돌아다녀야 했다.

  평상시에 자주 눈에 뜨이던 모든 미루나무가 감쪽같이 사라진 걸까. 늘 마주치던 미루나무가 어디로 간 걸까. 이 쯤에서 보았던 것 같았던 그 자리에 다른 나무들이 자리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함의 키는 더욱 자라고 있었다.  

  아니, 미루나무가 어디서 살고 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 것에 조급한 마음과 안타까움마저 생겼다.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서 미루나무를 찾아 떠도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물자 기를 쓰고 꼭 찾아내고 말겠다는 다짐까지 생겨났다.

  키 큰 미루나무를 만나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고 따뜻한 둥지를 틀고 싶을 거라는 스스로 위로까지 하면서 다니던 중. 이제 막 물을 채우려는 생기 넘치는 논두렁에 살고 있는 미루나무가 보였다.

  빗방울 후둑후둑 떨어지는 늦은 오후 시간에

  의정부 송산에서 민락동 산 길로 넘어가는 길에서...

 

  흐린 날씨 탓인가. 짧은 시간 막연히 미루나무를 바라보는데 또 명치 끝이 아리다.

  늘 이랬다.

  명치 속에 기가막히게 숨어있던 가시는 움직임의 표시도 없이 살짝 살짝 나를 찌르는 일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이제 알 것 같다. 그 동안 명치 끝이 싸하도록 아파왔던 이유를... 

  굳게 자리를 잡는 가시를 어서어서 뽑아 내고 저 미루나무처럼 오므리면서 살고 싶어서였을 거라는... 

 

  이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다.

  이제 내 가슴에 박힌 가시를 드디어 뽑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