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렇고 그런 일상 / 문숙자
나는 내 일에 관해서는 철처한 다른 것과 구분 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하면
다른 소소한 일들은 몇 분 지나지 않아 관심밖의 일이 된다.
즉,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그 일을 하는 나만 남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잠을 자는 시간이 매일매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잠 든 시간에도
무언가를 끄적이며 낙서를 해야 하고
사이사이 곰시랑곰시랑 집안 일을 해야만이 심사가 편하다.
그러다가 세 시가 넘은 거의 새벽녘의 시간이 가까워서야 깜박 잠이 들었다가
이른 아침이 되면 로봇처럼 일어나 또 하루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이 부족한 에너지를 가진 체력이
잠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지 않는 데는
잠깐잠깐씩 토끼잠을 자두는 것이 묘약일 것이다.
버스안에서건, 전철안에서건, 컴퓨터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깜빡 졸리운 시간엔, 소파에 누워 무릎담요를 덥고
십 분, 이십 분의 단잠이 꿀 맛보다도 더 달디 달다.
그리고 일 앞에서는 정신이 칼 끝처럼 선연해지는 그 순간의 쾌감 또한 근사한 묘약이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육체와 정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내 머리는 어느 때보다도 맑으며
내 눈동자는 빛이 난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가끔은,
내 삶의 가운데가 텅 비어있다는 것도 눈치 챈다.
일종의 공허 같은 것이 은밀하게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집 밖을 나서거나
어디를 가서도 곧바로 집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내가 잘가는 집 근처의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있다가 오곤 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이용하는 나만의 해결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런 공허감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를 한 편 본다거나, 즉흥으로의 단거리 버스 여행을 즐긴다거나,
아니면, 그 날 그 날마다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떠돌기도 하고
가까운 쇼핑 쎈터에 가서 집안에 놓을 장식품 하나라도 사들고 집으로 오면
가벼운 공허감을 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부릴 줄 아는 데도
꽤나 오랜 세월을 거쳐 터득한 것이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엊그제 일요일은 나도 모르게 투정을 부렸다.
아마도 토요일의 짜증났던(?) 후유증이 과했었는지도 모른다.
창문을 통해 쏟아지듯 덮치는 햇살에 현기증이 났던 것도 같다.
그런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걸까.
훌쩍훌쩍거리는데...
그가, 왜 우느냐고 놀라서 묻는다.
"나도... 꽃구경도 가고 싶은데...
아무리 나 혼자 다니는데 익숙해 졌지만...
혼자 다니는데도 한계가 있다...
내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 엉뚱하고 괜한 투정을 부리고 말았다.
실은, 꽃구경을 핑계삼아 내 외로움을 토해낸 나는 살짝 부끄럽기도 하였다.
학교에서의 꽃구경이 모자란다면 가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껄껄대고 웃으며 나가자고 보채는 그에게 미안해야 했다.
안다. 너무도 잘 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받는 중압감으로 요즘 흰머리가 더 느는 그를 보면서
매일매일 안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했었는데
왜 느닷없이 나 개인적인 공허감으로 똘똘 뭉친 투정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그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아니, 그 이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미안해하고 더 고마워했다.
내가 나이가 먹기는 먹었나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안스러워지고
미안해지고
소중해지는
이런 마음이 갈수록 더해지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먹으면서 뒤늦은 철이 드는 것일까?
그가, 나에게 철 들지 말라 당부한다.
철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삶이 피곤해진다고...
그냥 이대로... 자신의 그늘에서...
가끔씩 투정도 부리고, 싸움도 하면서... 살자고 한다.
가뜩이나 눈물이 많은데다
요즘 더 눈물이 많아진 나는 또 눈물이 나려 한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유난히 뾰쪽하게 튀어나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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