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마경덕

[마경덕]잡(雜)

문선정 2016. 8. 23. 13:46

잡(雜)


마경덕







옥수수 한 자루에

크기도 빛깔도 다른 알갱이들

검둥이 흰둥이 노랑이

씨 도둑질을 하고도 너무나 태연한 잡것들

줄을 지어 서있다


거슬러 가면 맨발로 밭고랑에 엎어진

늙은 검둥이 사내와 흰둥이 총각, 영문도 모르는 흙빛 아비가 있다

호미를 내던지고 푸른 치마를 흔드는 저 여자,

바람 같은 낯선 사내들과 얼룩덜룩 피를 나누고

씨 다른 새끼들로 일가를 이루었다


다산(多産)인 잡종만이 살길이라고

정오의 햇살에 후끈 달아오른 옥수수밭

일제히 만삭인 여자들, 아비도 모를 아기를 업고 서있다


마람 한 필 끊어 촘촘히 기운 겹겹의 옷

저 푸른 옷 아래 슬픈 계보가 있다

지을 수 없는 문신이 있다


쉿!

도시로 나가 잡부로 떠돌던

주인집 사내가 낫을 들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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