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雜)
마경덕
옥수수 한 자루에
크기도 빛깔도 다른 알갱이들
검둥이 흰둥이 노랑이…
씨 도둑질을 하고도 너무나 태연한 잡것들
줄을 지어 서있다
거슬러 가면 맨발로 밭고랑에 엎어진
늙은 검둥이 사내와 흰둥이 총각, 영문도 모르는 흙빛 아비가 있다
호미를 내던지고 푸른 치마를 흔드는 저 여자,
바람 같은 낯선 사내들과 얼룩덜룩 피를 나누고
씨 다른 새끼들로 일가를 이루었다
다산(多産)인 잡종만이 살길이라고
정오의 햇살에 후끈 달아오른 옥수수밭
일제히 만삭인 여자들, 아비도 모를 아기를 업고 서있다
마람 한 필 끊어 촘촘히 기운 겹겹의 옷
저 푸른 옷 아래 슬픈 계보가 있다
지을 수 없는 문신이 있다
쉿!
도시로 나가 잡부로 떠돌던
주인집 사내가 낫을 들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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