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지나면서 눈으로 대충 훑어 지나던 길을
오늘부터는 도보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야 언제나 신발 신고 집을 나서면 여행인 것을요
2009. 12. 10. 10시 50분...
신발 끈을 단단하게 조여매고 현관문을 나서니 보슬비가 내립니다
큰 길로 내려와 겨울 들판을 지나다보니
메말라 푸석했던 들판이 오랜만에 뿌려주는 비의 반들거림으로 반가워보입니다
보슬보슬하게 마른 풀들이 보슬보슬하게 내리는 비에 젖어드는 풍경속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보슬보슬해 집니다
이런 날에는 자칫하다가는 슬픔이 쉽게 유전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하루를 걸어야 하지요
걷다보니...
이 기분 이 느낌 얼마만인지……,
우산도 없이 이렇듯 온 몸으로 비를 맞이했던 아득한 기억이 밀려오는듯 합니다
방수능력이 뛰어난 점퍼를 덧입은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미끄러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기분이 삼삼한 가운데
아득히 멀어져버린 스무살 적 옛추억의 편린들로 풋- 웃음도 나네요
아, 어쨌든 이렇듯 청명한 비와 바람이 나와 동행해 주고 있으니
깊고 맑은 풍경속으로 아주 유쾌하게 빨려 들어갑니다
참 우습죠
연두마을 언덕배기를 내려와 시내로 가는 길에
이렇듯 여러 갈래의 길을 숨겨놓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으니...요
생각해보니, 보고도 느끼지 못한 이 아둔함이 참으로 미련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느 때라도
바람과 내가 동서남북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하여 오늘은
탑동을 지나 광암동을 지나 부처고개를 넘어 야트마한 산 길을 지나 아파트 사이를 빠져나가 시내를 가기로 했지만
빗줄기 점점 굵어지는 탓에 광암동 작은 마을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택시를 탈 수 있었지요
산 비둘기 자유로이 드나드는 숲속을 훔쳐보면서
새의 둥지 하나 없는 쓸쓸한 느티나무 앞에 서 있기도 하면서
개천 가 주변의 풍경을 만지작거리면서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오래된 집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걷다 우연히 만나 사진을 찍어달라시는 어르신들과의 새로운 만남,
그리도 다음 만남의 약속을 하고
구름이 덮어버린 먼 산의 풍광을 마주하기까지
그래도 꽤 오랜 시간을 걸었나 봅니다
빗줄기 굵어진 탓으로 오늘은 광암동 여기까지... 걷기로 합니다
갑자기 걸어야 할 길이 환하게 보입니다
연두마을 언덕배기를 내려와 쇠목 계곡으로
또 다음엔 자그마한 산골 초등학교 앞 다리 건너 산길로 접어 들어 조산 마을로
그리고 민초를 지나 한스캐빈을 지나 산악 자전거가 다니는 산길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작은 길, 너무 많이 숨어 있는 길을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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