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사로를 만나다, 인상파를 알게 되다
인상파 회화의 아버지이자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들과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 마네, 그리고 바르비종파의 거장인 코로, 밀레의 작품을 조명해보는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展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애슈몰린 박물관의 소장품 90여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상파는 과학적인 원근법에 의한 정형화된 화풍과 종교 및 신화에 의거한 주제에서 벗어나 빛에 의해 시시가각 변하는 주변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득하고 즉각적으로 그려낸 당시 매우 혁명적인 시도였다. 기존 화단의 거부와 갖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인상파'전의 8회에 걸쳐 개최되었는데 이 전시에 매회 작품을 출픔한 화가이자 타고난 인품과 굳은 신념으로 인상파 화가들이 흔들릴 때마다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여 인상파의 화풍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화가가 바로 '카미유 피사로'이다.
피사로의 작품은 특히 풍경이라는 소재에 집중하였는데, 초기에 코로, 밀레 등 바르비종파의 전원풍경화에 영향을 받은 그의 전통적인 풍경은 후에 인상파의 화풍을 받아들이면서 고전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니며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가교이자 근대회화의 완성인 인상파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인상파 화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피사로는 그의 일곱 자녀 중 무려 5명을 화가로 성장시켰으며, 그 중 첫 번째 아들인 루시앙 피사로는 영국에서 인상파의 보급에 공헌하였.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카미유 피사로의 인자하며 온화한 성품은 그의 인간적인 면을 돌아보게 해준다.
인상파의 설립과 발전에서 교육과 전파까지 인상파의 시작과 끝에서 모두 함께 한 카미유 피사로 근대미술의 시작인 인상파의 물결과 그 중심에 있었던 피사로의 다양한 업적 및 인간적 면모를 그의 자잔한 봄볕의 풍경과 함께 느껴 볼 수 있다.
카미유 피사로(1830. 7. 10 ~ 1903. 11. 13)
카미유 피사로는 1830년 당시 덴마크령이었던 서인도제도의 세인트 토카스 섬에서 듀대계통의 프랑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서구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에 교육을 받기 위해 갔고 프랑스에 대한 많은 애착에도 불구하고 평생 덴마크 국적을 유지하며 프랑스 사회와 정치의 변함없는 비판자가 되었다.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국제적 항구도시에서 자란 덕분에 프랑스어와 더불어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였다.
화가를 꿈꾸며 파리로 나온 1855뇬 25세때 파리 민국박람회에서 본 바르비종파의 작품에 감명을 받은 피사로는 코로, 쿠르케, 밀레 도비니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고 후에 인상파의 화풍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확립해 나갔다. 현대미술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화가 중 한 명인 세잔은 피사로에 대해 "내게 있어 아버지였다. 그는 배울 가치가 있는 사람이자 전능하신 신과도 닮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1883년에는 쇠라의 신인상파 기법을 사용하여 섬세한 점묘법으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으나 곧 다시 인상파 형식을 고수했고 죽을 때 까지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총 8회에 걸친 인상파전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작가이며 인상파 화가들의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피사로는 7명의 자녀들에게도 직접 그림을 가르쳤느데 그 중 5명을 화가로 성장시켰다.
-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와 인상파 친구들
카미유 피사로는 평생을 빛에 따라 변호하느 자연을 담고자 했던 인상주의의 철학과 미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그림세계를 꾸준히 지켜온 화가이다. 1855년 파리로 건너간 피사로는 바르비종파의 그림에 강하게 이끌렸는데, 인상파의 선구자라 불리는 바르비종파는 밀레, 코로를 중심으로 1840년대부터 퐁텐블로 숲 주변의 전원에서 자연주의적인 풍경화를 제작한 화파를 말한다. 그들의 풍경화는 자연을 대하는 화가의 태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였고, 이후 도래하게 되는 인상주의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피사로는 온화한 색상 사용과 안정적이고 견고한 구도의 코로를 스승으로 섬겼는데, 코로가 제작한 [빌다우레 근처으 르 프티 샤비유]는 현존하는 프랑스 회화 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에 옥외에서 그려진 작품의 하나로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빛의 찬란함과 균형 잡힌 구도는 피사로의 초기 인상파 작품의 기반이 된다.
이후 자연의 대상에 비추어 뿜어 나오는 빛을 직관적으로 지각하여 형태에 대한 서입견 없이 순수한 첫 인상을 그ㅐㄷ로 재현하고자 한 한 무리의 그룹이 등장하였는데,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등을 위시로 한 인상파 화가들이다.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화폭 속에 담고자 했던 인상파는 어두운 스튜디오의 낡은 아카데미즘을 거부하였고 종교나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눈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네는 인상파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초기의 인상파에게 있어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마네가 그린 얼마 안 되는 순수 풍경화의 하나로 1870년대에 그려진 [교회가 있는 마을 풍경]에서 보여지는 경쾌하고 재치있는 붓놀림과 빛에 대한 의식은 이즈음 마네와 인상파의 연게를 보여주고 있다. 르누아르의 [수목이 있는 풍경]은 말년의 작품이지만 거기에는 인상파 시대에 몸에 배인 부드러운 터치가 건재하다.
- 피사로가 본 풍경과 전원생활
풍경은 피사로 예술의 중심이었다. 풍경에 임하는 피사로의 방법에는 전통과 혁신이 존재하는데, 그는 푸생에서 쇠라에 이르는 프랑스 풍경화의 전통을 강하게 의식하면서도 항시 새로운 도전과 발상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피사로의 긴 화업 중에 그린 작품들은 1860년대부터 세기말에 걸쳐 프랑스 회화사의 전호나기를 보여주는 풍경 및 도시 풍경에 대한 접근방법의 변환을 자세히 반영한 것들이었다.
초기 피사로의 작품은 코로의 작품에서 보이는 고전적 풍경에 인상파의 자유분방함을 담은 [퐁투아즈 풍경]과 같은 것이었는데 이러한 평온해보이는 전원풍경은 초기에 인상파 화가들이 좋아하던 모티브였다. 화면 왼쪽을 수목으로 채우고 오른쪽은 개방된 채 열어 둠으로써 피사로는 코로의 [빌 다우레 근처의 르 프티 샤미유]과 같은 고전주의적 풍경화의 전통적인 고도에서 탈피해 보다 근대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었다. [몽푸코 농장의 설경]에서 피사로는 인상파로서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다.
눈이 지니는 찬란함과 빛의 반사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있어 매우 좋은 제재였던 것이다. 피사로는 1885년 경 쇠라와 시냑과의 만남을 계기로 잠시 동안 신인상파의 색점의 병치에 의한 점묘화법을 수용하기도 한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창밖의 풍경, 에라니 쉴엡트]는 그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에라니 쉬르 엡트의 가을 아침안개]와 [가을, 에라니 쉬르 엡트의 일몰]은 모두 피사로의 원숙한 인상주의 양식의 자신감 넘치는 넉넉함을 표현하고 있으며, 대기와 빛의 효과가 만들어 내는 망막의 영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만년의 피사로는 날씨, 시간, 계절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효과를 탐구하고 있는데, [비오는 날의 튈르리 정원]역시 파리에 있는 유명한 정원의 비 내리는 풍경을 훌륭하게 그려내 ㄴ것으로 피사로의 역작이다.
- 피사로의 가족
피사로는 인상파를 이끌었던 인상파의 아버지이자 열정적인 교육자로서, 그의 인자하며 온화한 성품은 피사로家에 많은 재능 있는 예술가를 탄생시켰다. 그의 친구 모네, 세잔, 고흐 등의 예술작품들로 꾸며진 창조적인 분위기의 집에서 자란 피사로의 일곱 자녀들은 아버지를 비롯한 당대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아버지의 화실에서 직접 그림을 배웠다. 이들은 '에라니파' 라는 유파를 형성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피사로가 그녀의 아내인 줄리 바레이를 그린 최초의 초상화인 [바느질하는 피사로 부인]은 인물의 침착한 자세가 절제된 색상과 어우러져 화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 밖에도 첫째 아들 루시앙을 그린 석판화나 허약해서 일찍 죽은 딸을 그린 유파 등 피사로는 그의 가족 초상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화가로 활동한 피사로의 자녀들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이는 첫째아들 루시앙 피사로이다. 세잔, 모네, 반고흐, 마네 등 인상파의 대가들에게서 그림을 배운 루시앙은 1890년 경 프랑스에서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영국에서 인상파를 전파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는데, 그의 프랑스 인상파 및 신인상파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영국의 전위 화가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타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보낸 수많은 피사로의 편지에서 피사로의 문장력과 함께 가족에 대한 빈틈 없는 관심과 배려를 볼 수 있다.
루시앙의 초기 작품 [귀머거리 여인의 집, 에라니]나 1890년에 영국 자신의 집과 정원을 그린 [정원 입구, 에핑] [회백색의 서리 치즈윅]등에서 아버지 피사로의 영향이 나타난다. 그 밖에도 가장 특출한 재능을 지녔으나 이른 죽음을 맞이한 펠릭스나 피사로의 손녀 오로비다까지, 피사로家의 사람들은 피사로의 교육열과 그의 동료 인상파 화가들과의 교우로 인해 인상파의 미학교ㅏ 철학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 화풍을 후세대에 전달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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