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窓 .../지상의 불꽃 -

茶에 대한 마음가짐

문선정 2009. 2. 4. 13:30

 - 茶에 대한 마음가짐

 

옛부터 우리네 풍속은 『손님대접』에 여간 정성을 쏟지 않았다.

그러한 손님대접이나 잠깐 예고없이 들린 손님에게도 우선 茶 한 잔이라도 대접 못하면 섭섭히 여기는게 우리들의 미풍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녹차가 보편 습관화되지 않았지만 우리 생활속에 깊숙히 배어있는 茶生活을 이 녹차를 대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보통 녹차하면 대접하는 측이나 받는 측 모두가 약간 정성이 부족한 것 같이 느끼지만 이 녹차야말로 쓰고 떫은 차가 무엇이길래 하겠지만

이 茶야 말로 인간을 생각하게 하는 고고한 천성을 지니고 있다.

 

1) 茶나무가 원래 아무 곳에서나 자라지 않는다

2) 상록수

3) 이식이 어렵다

4) 꽃이 피고 난 후 많은 종자(열매)를 맺는다

5) 잎에 향이 은은하여 깊이 있고 인체에 이로우며 오미를 갖추었다

    곧, 이는

    ① 자기 위치를 알고

    ② 변절하지 않고

    ③ 지조가 굳다는 점

    ④ 번영함

    ⑤ 우리 인간의 ㅇ식과 관계가 있어 우리 사고력을 일깨워 줌

 

첫    째 : 인간의 기본 생명체는 평등하지만 살아가는 과정에 어른과 스승 윗사람과 아랫 사람이 있듯이 우리 각자의 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나를 잘 헤아려 비굴치 않게 위치를 지켜 사회질서를 원만히 이룸

둘    째 : 배신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훌륭한 점, 이용만 하고 앞에서는 그런척 하다

            서 딴 짓한다면 금수나 다를 바가 무엇이며 인간의 위치를 어찌 운운하겠느냐.

셋    째 : 부부 간이나 형제, 친족 이웃간에도 지조를 지킬 줄 안다면

            우리의 발전과 무궁한 번영의 민족이 될 것이며 지도적 민족으로의 발전을 확신한다.

넷    째 : 우리는 번영의 민족이 되기 위해 부지런함과 성실함의 시점이다.

다섯 째 : 우리의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오식의 소양을 높이자는 뜻.

            이것은 오미로 비유하여 쓰고 떫고 달고 향내 나는 등으로 표현되고

            다시간이 맞으니 바로 우리의 중정한 인생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괴로와도 잘 참아 넘기면서 성장할 줄 알아야 하고

            달다고 마시고 쓰다고 버리지 않는 바탕을 잘 다듬어야 한다.

 

원래 이 茶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신농씨가 농사 판정을 맡아 이 세상에 오셨던 태고때부터였으며,약으로 마시다가 주공 때에는 세상 널리 알려졌으나 당대에 와서 茶의 구실을 갖추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위로는 왕가로부터 신에게 받치는 의식으로 선비 가정에서는 조상을 받드는 차례에 까지 올리면서 많은 학자들이 즐겨 마셨지만 서민 층을 파고 들지 못해서 지금까지 미약하게 이어져 왔다고 본다.

더욱이 茶의 천성을 학자들이 공감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茶를 다루기 다룰 때는 모든 예의범절을 갖추기를 원칙으로 삼되 이 茶 정신이 배였을 때에는 어떤식으로 마시는 자연법칙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오직 옛부터 군자지국 또는 동방예의지국으로의 말을 듣는 우리 민족이기에 대인 관계의 가장 발달된 전형인 예의로 다과를 나르는게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전통미덕의 한 기본을 살리는 일이 되는데, 이는 진리요 우리 자녀에게 무언 중에 교훈을 주는 자녀 교육이 아니겠는가.

나는 유교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일상 생활 하나하나가 도(道)의 자리이며 불교에서 위의랑 불법이라고 했듯이 행주파와 이것이 예의 범절로 잘 다듬어 질 때 가정과 이웃 마을 그리고 국가가 올바르게 다듬어 지리라 믿는다. 초의 선사가 혼자 마시는 茶는 神이라 했듯이, 이미 몸가짐이 갖추어진 귀인의 상태에서는 누가 보든 말든 우선 본인이 보고 있고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짐승의 먹이로 타락할 수는 없는 게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茶를 다루는 자세이며 미와 덕을 갖추는 지름길이며 茶人들이 많이 주고 받는 적청화경이 아니겠는가

 

寂 은, 고고한 천성을 갖춘 茶를 마실 때는 조용해야 된다는 것 조용해야만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며

淸 은, 다기나 방안을 깨끗이 해야 되며 다엽이 예민하여 사소한 냄새도 먼저 흡수하기 때문에 옳은 茶 맛을 맛 볼 수 없다는 것이다.

和 는, 화목하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茶香을 즐기는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다시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히 서로를 아끼며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敬 은, 다실 뿐만 아니라 茶를 마시는 동안에는 무엇이든지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니 손님은 물론,

        물 한 방울 茶 한 톨까지 모두 소중히 여기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지식 교육에만 급급하다 보니 가정교육이 소홀해 진 것이 사실이며 그렇다고 당장 이래라 저래라 하다 보면 부모와 자식 사이가 점점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茶生活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茶정신을 심으면서

내 가정, 이웃, 동리, 사회에 나아가 국가 세계에 이루룰 수 있는 큰 미덕의 하나가 될 것이다.

茶를 탕에 부어 우려 내야 茶 구실을 하지만 이물을 결숙에서 경숙으로 거쳐야 비로소 茶를 우려 낼 수 있다.

처음 결숙에서는 100도를 고르게 익혀야 하는 것이고, 경숙(뜸을 들인다)에서 약간 식어야 茶 우리기에 알 맞다.

이 것을 우리의 감정에 비유하면 결숙은 우리가 어디까지나 감정에 솔직해야 하지만 결숙으로 이 감정을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직언을 하면 누군가가 흠을 입기 마련이므로 뜸을 잘 들여 다시 80도로 식혀 행하자는 교훈이 바로 茶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다음은 간이다. 음식을 조리 할 때  간을 잘 맞출 줄 알면 흔히 솜씨가 좋다고 한다.

즉 다실의 분위기, 물의 익힘, 茶와 물의 양적 배합이 잘 이루어 져야 짜지도 싱겁지도 않는 것이 간이 맞는 좋은 茶를 대접할 수 있다.

오랜 茶生活을 통해서 얻어지는 가감 불교의 혜안 평등이 생겨지며 현대적으로 말하면 감으로 얻어지는 직관지이다.

茶의 간이 우리에게 은근히 상징하는 것은 인간 생활에서 시(時) 공(空) 인(人) 3대 간의 간 맞추기. 즉 우리 생활을 유용하고 짜임새 있게 지내는 교훈이라고 한다.

불기(不器0런 어느 때나 아무 데서나 쓰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식들이 간혹 말썽을 부린다던가 사회 동료지간에도 원만치 못한다 손 치더라도 쓸모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인 만큼 평소에 아끼고 소중히 대하면 남이 못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다기는 달리 용도가 없는 것이지만 아끼고 소중히 다룰 때 손님이 오실 때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일기일회성 또는 일회성 즉,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니만큼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람을 다시 없이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ㅇ에 일회성 아닌 것이 없다. 그런 만큼 다기를 소중히 다루는 태도를 통하여 무엇이든 다시는 못 본다는 소중함을 기를 수 있게 해 준다.

심일경성는 이렇게 茶生活을 하다 보면 감정의 진실과 순화를 거쳐 주체와 대경의 경계가 없어지는 즉, 주체와 객체가 홀연히 하나가 되는 무분별의 초월의 상태, 삼캐의 지경에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어쩌면 다례일미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부가 가정과 살림에서 알뜰히 정성을 들이고 있으면 그것이 곧 훌륭한 생활례가 될 것이다.

이렇게 다듬고 높여진 茶生活이야 말로 바로 다신의 경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니 茶삼매가 이르는 마지막 경지,

다도 또는 생활태도이니 茶로서 우주의 법도 인생의 진리를 여실히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출 처 : 이명원 선생님 평전. 2008년 11월 16일 동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