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흰바람벽이있어

[백석]흰 바람 벽이 있어

문선정 2007. 11. 28. 18:10

- 흰 바람 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에 흰 바람 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 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 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그리고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 벽에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 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쨈과 도연명과 라이네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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