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白石)
1912-1963.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行. 오산고보를 거쳐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학과 졸업, 그 후 조선일보 기자, 함흥의 영생고보, 영생여고보 교사 등을 역임했다.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그 母와 아들] 당선되었으나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1939년 만주로 이주하여 측량업무, 세관업무에 종사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 후엔 북한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고당 조만식 선생의 통역 비서로 일했다. 시집으로 {사슴}(1936), {백석시전집}(1987) 등이 있다.
주막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八모알상이 그 상 위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이 뵈었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군들을 따러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조광}, 1935. 11.
여우난골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新里고무 고무의 딸 李女 작은 李女 열 여섯에 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土山 고무 고무의 딸 承女 아들 承동이 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란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洪女 아들 洪동이 작은 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 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조광}, 1935. 12.
통영
옛날엔 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港口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조광}, 1935. 12.
가즈랑집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山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즘생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즘생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내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엔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山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우란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미꾸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아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시집 {사슴}, 1936. 1.
고방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입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 산적을 꿰었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짚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끼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시집 {사슴}, 1936. 1.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시집 {사슴}, 1936. 1.
寂境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츰 나 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었다
人家 멀은 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시집 {사슴}, 1936. 1.
城外
어두어오는 城門 밖의 거리 도야지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
엿방 앞에 엿궤가 없다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달구지는 거리 끝에서 江原道로 간다는 길로 든다
술집 문창에 그느슥한 그림자는 머리를 얹혔다 ―시집 {사슴}, 1936. 1.
女僧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시집 {사슴}, 1936. 1.
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내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아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시집 {사슴}, 1936. 1.
旌門村
주홍칠이 날은 旌門이 하나 마을 어구에 있었다
'孝子盧迪之之旌門'―몬지가 겹겹이 앉은 木刻의 額에 나는 열 살이 넘도록 갈지字 둘을 웃었다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아드는 아츰 구신은 없고 부헝이가 담벽을 띠좋고 죽었다
기왓골에 배암이 푸르스름히 빛난 달밤이 있었다 아이들은 쪽제비같이 먼길을 돌았다
旌門집 가난이는 열 다섯에 늙은 말꾼한테 시집을 갔겄다 ―시집 {사슴}, 1936. 1.
연자간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 풍구재도 얼럭소도 쇠드랑볕도 모다 즐겁다
도적괭이 새끼락이 나고 살진 쪽제비도 트는 기지개 길고
홰냥닭은 알을 낳고 소리 치고 강아지는 겨를 먹고 오줌 싸고
개들은 게모이고 쌈지거리하고 놓여난 도야지 둥구재벼 오고
송아지 잘도 놀고 까치 보해 짖고
신영길 말이 울고 가고 장돌림 당나귀도 울고 가고
대들보 위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 ―{조광}, 1936. 3.
백화 ―山中吟 4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너머는 平安道 땅도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조광}, 1938. 3.
八院 ―西行詩抄 3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慈城은 예서 三百五十里 묘향산 百五十里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內地人 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들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車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內地人 駐在所長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조선일보}, 1939. 11. 10.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잼'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문장}, 1941. 4.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이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학풍}, 194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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