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박지웅

[박지웅]일요일 아침 아홉시에는

문선정 2018. 3. 13. 17:32

일요일 아침 아홉시에는


박지웅




  일요일 아침 아홉시에는 무단횡단을 하고 싶다 그래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마음이 초록불 빨간불 끄고 이편저편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홉시에는 도로 수십 킬로 미터가 맑은 여울로 바뀌면 좋겠다 바지 둥둥 걷고 들어가 은어 낚시를 하면 좋겠다 낚앛앤 은어를 어영부영 다 놓치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홉시에는 묶여 있던 개들이 모두 풀리면 좋겠다 갇혀 있던 새들이 동네 빵집으로 날아들면 좋겠다 펄쩍 뛰는 웃음소리로 아수라장이 되면 좋겠다


  일요일에는 신문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마음이 마음만 펼쳐 읽었으면 좋겠다 우체통에 키스로 봉한 편지*가 꽂혀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홉시에는 큰 솥에 잔치국수를 삶다가 펑펑 울고 싶다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지웅시집 : 빈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 문예중앙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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