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박지웅

[박지웅]라일락 전세

문선정 2016. 8. 17. 20:44

-라일락 전세


박지웅





라일락에 세 들어 살던 날이 있었다

살림이라곤 바람에 뒤젖히며 열리는 창문들

비 오는 날이면 훌쩍거리던 푸른 천장들

골목으로 들어온 햇살이 공중의 옆구리에 창을 내면

새는 긴 가지를 물어 구름과 집 사이에 걸었다

그렇게 새와 바람이 그린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따라가면 하늘이 어느덧 가까웠다

봄날 라일락꽃이 방 안에 돋으면

나는 꽃에 밀려 자꾸만 나무 위로 올라갔다

주인은 봄마다 방값을 올려달랬으나

꽃 피면 올라왔다가 꽃 지면 내려갔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 나는 라일락 꼭대기에 앉아

골목과 지붕을 지나는 고양이나 겸연쩍게 헤아렸다

저물녘 멀리 마을버스가 들어오고 이웃들이

약국 앞 세탁소 앞 수선집 앞에서 내려 오순도순

모두 라일락 속으로 들어오면 나는 기뻤다

그때 밤하늘은 여전히 신생대였고

그 별자리에 세 들어 살던 날이 있었다

골목 안에 라일락이 있었는지

나무 안에 우리가 살았는지 가물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