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최연수

[최연수]털실바구니

문선정 2016. 8. 17. 16:11

-털실바구니


최연수





우리 집에는 서로 다른 종족들이 산다

부화하기 직전의 알 같은,

둥굶의 안은 위험해서 젖은 내부가 비릿하다

서로 다른 염색체와 색깔로 뭉쳐진 감정들

상처를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사이에는 공기층이 있어

털과 털 사이의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누군가의 옷이었을 저 털

그 옷을 벗겨 꼬아 놓은 실의 온도는 몇도 일가


내 전생은 양(陽)을 좋아하나는 순한 양(洋)

양이 걸어온 모래언덕을 찾아

바구니에 담긴 털의 미세한 울음소리를 듣는다


탈모가 시작된 남편의 모낭에 영양을 공급하는 일

취직난에 코 빠뜨린 아들의 코를 잡아주는 일

둥지를 떠난 딸이 뽑아놓은 깃털의 속내를 읽는 일


꼬인 매듭을 풀어내고

무심하게 감아놓은 시간을 봅아내서

촘촘히 짜내려간다

딱딱한 뭉치가 솔솔 풀리며

대기 중인 둥긂이 부화를 기다리고 있다

냉기로 가득 찼던 감정의 온도가 올라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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