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세상 1/고궁 나들이

[스크랩] 억새 - 문숙자

문선정 2008. 10. 23. 11:27

  

억새 / 문숙자

 

온 산 하얗게 빛내는 것만이

희망이고 목적이었던 것이

겨우내 서걱해 진 몸뚱이로도

저렇게 꼿꼿할 수 있는 것인가


바람 잘 날 없는 것은

돌개바람에 뿌리 채 뽑혀 나가는

아름드리 가지 많은 나무뿐이 아니다

바람을 지휘하는 격렬한 지휘봉처럼

키 작은 초록의 바람막이로

허리 휘어지는 억새를 보라


오래 써버린 철수세미처럼 엉키어진 머리

깡마른 다리로 병원을 찾는

고부라져 키 작아진 노인을 닮았다

허리 들어

마지막 떨어지는 햇살이라도 받아 마시면

지난 청춘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가보다

 

 

 

 

 

 

 

 

 

 

 

 


출처 : 쌓아올린 그리움
글쓴이 : 글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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