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여, 고마워요!/오-늘, 하루는

날마다 날마다 쌓여가는

문선정 2007. 7. 16. 20:59

 

 

까치 한 마리 벤치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오래 좀 더 오래

벤치 주변에서 머물기를 바랐는데

몇 걸음 종종거리더니

푸드득

어딘가로 떠났다

날아갔다

 

2007. 7. 16 오후 봉선사 뜨락...

 

 

 

 

비 내리는 월요일이네

월요일, 자박자박 빗님 오시는 날은 축복받은 기분으로 마음 달뜨는 나라네

 

주말이 지나고 휴일이 지나고

새로이 시작하는 한 주의 첫 날

바쁜 것 같기도 하면서

마음 한 번 먹으면 언제라도 여유라는 것을 부려도 티 안나는 날이라네

비까지 내려준다면... 나는 맘껏 낭만적인 딜레마에 빠져도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라네

 

어디로 갈까나

찰박찰박 오시는 빗님과 함께

어디로 갈까나

 

가슴가득 그리움으로 꽉 차 오르고 있다는 걸 예감할 수 있다네

내 어머니의 품속이 그리워 젖내가 그리워 얼굴부비고픈 날이라네

감기기운이 있는지 가끔씩 지끈 머리를 쥐어짜는 듯 한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재채기...를 하면서

오전 내내 마음을 동동거리면서 시간의 눈치를 보고 있다네

 

실은 어제 늦은 밤까지 오늘 일정의 계획을 미리 짜 놓았었다네

수종사를 거쳐 두물머리로 갈까

전철을 타고 덕수궁으로 갈까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들기 전까지 어디든 가려고 잔득 마음 벼르고 있었다네

새벽녘, 잠시 오한이 덮치는 듯 하더니 아주 옅은 미열까지 동반하고 있었다네 

더럭 겁이 났다네... 걱정으로 몸을 뒤척이며 빗소리 깔린 밤을 지샜다네

 

밀물처럼 오한이 밀려오다가 썰물처럼 밀려나가다가

드문드문 미열이 자글거리다가

이렇게 옹크려진 마음에 나는 더 더 더 안달을 하면서

아침이 되어서는 내 동그란 이마로 자글자글한 신열이 모여들었다네

 

어떤 신열일까... 어떤 그리움의 신열일까

문득, 지난 밤 문자를 주고받던 내용이 떠 올랐다네

[00야... 자니... 이제 풀자... 웃음이 나... 웃는다고 화내지 마]

00도 내 꿈을 꾸었다네

둘이 부둥켜 안고 우는 꿈을 꾸었다네

핑그르~ 눈물이 도네

설마, 설마... 그래서 열이 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틈틈히 시간의 눈치를 보는 나는 어쩔 수 없다네

정말 나 다웁다는 걸 느꼈다네

정말 어쩔 수 없다네

 

오후 한 시,

굽없는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선다네

찰박찰박 내리는 비와 나란히 하고 짧은 시간 여행을 한다네

차가운 빗방울이 자글거리는 미열을 식혀준다네 참 다행이라네

밤부터 내려 준 비는 아주 성실하게 모여모여 군데군데로 흥건히 모여있다네

그렇게 모여있는 물 위를 바퀴를 구르면서 나는 물보라를 일으키면 되는 거라네

정말 신나는 일이라네

 

"재미있는 일이지요

신나는 일이지요

암요

그럼요

재미있는 일이고 신나는 일이고 말고요"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산호빛을 띠는 부추꽃이 줄 서 있는 농로 길을 지나

망초꽃의 군락지를 지나

어느 이름 모를 노란 꽃이 어여쁘게 피어있는 꽃무리를 지나

들판을 가로 지르고 고개를 넘어

다시, 시커먼 등비늘을 번들거리며 물을 머금고 있는 곧은 도로를 지나

물고기 입질에 벙긋거리는 작은 저수지를 지나고

좁고 고불고불한 수목원 길을 달리고 달려서

연꽃이 무리지어 있고 오리떼 평화로이 노니는 여기는 봉선사라네

 

  

연꽃잎이 무성하고 샛노란 창포로 수놓은 연못에는

그리움이 술렁거리고 있다네

지난 여름 이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다시 여름이 오고

또 다시 이 곳에는 연못 주위엔 온통 그리움이 술렁거리고 있다네

오늘 같은 날은

오늘처럼 물기 잔득 머금은 초록이 내뿜는 풍경은

누구라도 어떤 작은 그리움 하나라도 언뜻언뜻 스치기라도 한다네

그렇다네

정말 그렇다네

 

마음 따라 이 곳에 와서 잠시 머무는 사람들은

가슴 가득 주체할 수 없는 것이 있어 이 곳에 온 거라네

그렇다네

정말 그래서 온 거라네

 

날마다 날마다 쌓여가는

그 무거운 것 때문이라네

온 세상이 물기 잔득 머금은 날에 이 곳을 찾으면

훌~훌~ 가벼워져서

왔던 길 가뿐하게 돌아 갈 수 있을 거라네

그렇다네

정말 그렇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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