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사람의 상처
이정록
삽날에 잘린 눈사람을 어루만진다
살집 속에 결을 만들어놓은 흙 부스러기
때문에, 삽날이 지나간 자리가 꽃등심처럼 곱다
아름다운 것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구나
등을 찍혔는데도 무늬를 보여주는 눈사람
저 흙길을 따라가면 서걱서걱 귀저기 얼어 있던 안마당
또 배가 불러오던 어머니를 만날 것 같다
마음 짠해서 어둠을 밝히는 눈송이들
왱이낫이 박힌 옹이 많은 옛길을 덮는다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겹겹 붕대를 두른다
삽날이 지나간 눈사람, 그 흙밥의 나이테를 어루만진다
-시집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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