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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어떤 직무유기

문선정 2011. 2. 8. 14:00

- 어떤 직무유기

 

 

                                        

                                                                                                                                 목성균

 

 

 

 

 

   '강릉 영림서 진부관리소'에 근무할 때 이야기다.

   섣달 그믐날이었다.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저녁 때가 되자 서울서 내려온 강릉행 귀성버스들이 모두 진부 차부 앞 대로변에 꼬리를 물고 멈춰 서서 불야성을 이루었다. 언제 대관령 눈길이 열릴지 모르는 마당에 젊은 승객들은 설국(雪國)의 낭만에 신명이 나서 진부 장터를 들개처럼 쏘다녔다.

   처음으로 객지에서 맞이하는 섣달 그믐인데다 눈까지 하염없이 내려서, 나는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고향 생각만 났다. 고향에 아내와 세 살짜리 딸이 있다. 고향으로 머리 둔 짐승은 모두 귀성(歸省)을 하는 세밑이다. 객지에 나간 남편이 오나 싶어서 수시로 동구 밖을 내다볼 아내의 얼굴과 방싯방싯 웃는 세 살바기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퇴근 무렵 소장이 나와 선배 직원 권 주사를 소장실로 불러들였다.

 

   "밤이 깊거든 둘이 노동리에 가서 기소중지 중인 도벌꾼을 잡아오시오."

 

   소장의 말인 즉슨, 섣달 금믐에다 눈까지 이렇게 쌓이는데 제 놈이 처와 새끼 생각나서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어도 집에 안 돌아오고는 못 배길 거라고 했다. 나는 섣달 그믐날 밤, 눈에 묻히는 산골 동네에 가서 기소중지자를 잡아오라고 시키는 소장의 명령이 아무리 직무라지만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님, 눈을 피해서 동네로 내려온 산짐승은 안 잡는 법인데요."

 

   권주사도 나와 동감이었던지 소장에게 감히 한마디 했다.

 

   "그는 산짐승이 아니고 범법자야, 당신은 범법자를 잡을 의무가 있는 사법경찰관이고, 그 점을 명심하란 말이야. 눈을 피해 들어왔든, 눈에 슴어들어 왔든, 놓치지 말고 반드시 잡아와."

 

   소장이 벌컥 화를 냈다. 한 길에서 늙어 버린 직업인의 단호한 소신이었다.

   자정이 넘어도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우리는 소장이 수배해 준 제재소의 산판차를 타고 노동리에 갔다. 라이트도 켜지 않고 눈빛(雪光)에 길을 더듬어 설백(雪白)의 골짜기로 깊이 빠져들어 갔다. 산골 마을은 눈에 묻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도벌꾼의 오두막집도 방심한 채 눈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고향 건넌방 방문에 밝혀진 발간 불빛이 눈에 선했다. 어린것은 눈처럼 소록소록 깊이 잠들고 아내는 혹시나 하고 밤을 지새우며 나를 기다릴 것이다. 눈운 소복소복 댓돌 아래까지 쌓이는데 책을 들고 깜박깜박 조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우리는 먹잇감을 덮치려는 포식동물처럼 웅크리고 오두막집으로 숨어들었다. 댓돌 위에 하얀 여자 고무신 한 켤레와 남자 농구화 한 컬레, 그리고 조약돌같이 작은 까막고무신 한 컬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분수 적게 큰 남자 농구화는 다 헐고 흠뻑 젖어 있었다. 신발의 모습에서 방안에 잠들어 있는 도망자의 핍박(逼迫)한 날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박목월 님의 시집에서「가정」을 읽게 되면 그때 그 도망자 일가의 신발 모습이 선연하게 눈에 떠오른다.

 

 

            내 신발은

            십구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권 주사는 뒷문을 지키려고 뒤꼍으로 돌아가고, 나는 봉당에 올라가서 방에다 대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소리를 조용히 무겁게 던졌다.

 

   "계십니까? 영림서에서 왔습니다."

 

   방안에서 당황하는 인기척이 났다. 불이 켜지고 어린애가 깨서 울었다. 잠시 후 도벌꾼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뒷문으로 달아나지 않고 앞문으로 당당히 나왔다. 거기까지는 참 잘한 짓이었다. 그가 만일 뒷문으로 달아나려고 했다면 우린 그의 비열성(卑劣性)에 동정의 여지도 없이 수갑을 채웠을 것이다.

   도벌꾼이 댓돌에 걸터앉아서 묵묵히 농구화를 신고 신발 끈을 졸라맬 때, 우리는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농구화 끈을 졸라매는 도벌군의 의지를 몰랐다면 사법경찰관의 직무능력이 모자라는 것이고, 알고도 모르는 체했으면 직무유기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감상에 잠겨 도망자를 앞에 놓고 방심하고 있었다. 방심이라면 직무태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사실은 농구화 끈을 졸라매는 도벌꾼의 의지를 짐작하면서도 소리내서 우는 어린것을 안고 소리 없이 우는 젊은 아낙의 애련한 모습에 우리는 의당 취할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직무유기랄 수 있다.

   도벌꾼이 앞장을 서서 사립을 나서고 우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사립을 나선 도벌꾼이 '지엠씨'가 대기하고 있는 동구 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편 방향인 운두령 쪽으로 적설을 온몸으로 헤치며 노루 모둠발질 하듯 껑충껑충 뛰어갔다. 생각지 않은 돌발 사태에 우린 망연했다. 설원에 필사적인 흔적을 남기며 도벌꾼은 도망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나는 도벌꾼의 도주에 인간적 배신을 느끼고 발끈해서 그의 뒤를 좇아가려고 했다. 권 주사가 내 소매를 잡으며 어리석은 짓이라는 눈짓을 했다.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자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절박한 마음의 거리는 좁힐 수 없는 것이다.

   아내와 아기가 눈발 속으로 사라지는 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기가 훗날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답지 못한 도벌꾼의 비열에 나는 비열을 느꼈다. 이 눈 속에 어디로 갈 것인가.

 

   "아빠 까까 사가지고 올게." 아기에게 그렇게 말하고 의연하게 연행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때 권 주사가 울고 있는 도벌꾼 아내와 어린것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아가야, 아빠 까까 사러 갔다."

 

   나는 지금도 가끔, 문득 그 말이 생각나서 목젖이 뜨끔하다. 인간적 배려의 한마디였다. 그때 그 모자에게 그보다 더 필요한 말은 있을 수 없다. 권 주사는 어떻게 그 말을 할 줄 알았을까. 그 한마디는 도벌꾼 아내의 눈 위에 주저앉으려는 마음을 부축해 주었음은 물론이고 어린것에게는 아빠에 대한 이미지를 보전해 준 것이다. 나는 권 주사가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선배는 괜히 선배가 아니다. 한 길에서 얻은 직업적 슬기 때문에 선배다.

 

   "당신들은 분명히 직무유기했어, 눈길이 열리거든 원주지청에 가서 담당 검사에게 사실대로 수사보고를 하고 응분의 문책을 받도록 하시오."

 

   소장의 명령은 단호했다. 우리는 소장의 명령대로 원주지청에 가서 담당 검사에게 솔직하게 수사보고를 했다. 다행히 젊은 검사는 직무가 태만했다고 우리에게 시말서를 받는 것으로 일을 종결해 주었다. 젊은 검사가 어떻게 그런 아량을 베풀 줄을 알았을까. 깊은 적설의 골짜기에서 나온 부하 직원의 딱한 행색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는지, 위계(位階)의 우월의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공무원의 직무유기는 구속 수사할 사안이다. 우린 공무원으로 참 위험한 짓을 했다. 만일 검사가 우리를 금품을 수수하고 피의자를 놓아 주었다고 오해를 했으면 시말서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지금도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밤이면 그때가 생각난다. 소리 내서 울던 어린 것과 소리 죽여 울던 새댁의 애처로운 모습을 생각하면 도벌꾼을 놓친 게 아니고 놓아 준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함박눈이 내리는 밤의 직무유기가 내 인생의 공덕인 양 흐뭇하기 때문이다.

 

 

목성균 : 1938년 충북 괴산군 연풍에서 태어나 청주상고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중퇴했다.

                 1968년 산림직 국가공무원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25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1993년 퇴직 후「월간 에세이」에 초회 추천된 뒤, 1995년 월간「수필문학」에「속리산기」로 추천 완료됐다.

                 2003년 수필집『명태에 관한 추억』이 문예진흥원 우수문학 작품집에 선정되었고,

                 2004년 3월 제22회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5월 타계했다.

 

                저서로『명태에 관한 추억』(2003),

                         『생명』(2004),

                          선집으로『행복한 고구마』(2010),

                         『돼지불알』(현대수필가 100인선,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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