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눈먼자들의 도시
주 연 : 줄리안 무어, 마크 러팔로
날 짜 : 2008. 11. 20
눈먼자들의 도시
가끔 이런 영화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원작자와 감독이 바라는 알찬 내용으로 꾸미려는 의도는 짐작하겠지만, 왜...? 라는 이유가 빠지는 데서 맥이 풀렸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레지던트이블을 떠올렸을까.
이 영화가 좀비영화와도 같은 맥락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대책없이 퍼지는 바이러스 전염으로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왜...? 어떻게...? 의 발단이 전혀 도드라지지 않는 영화는 처음부터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도 남았다.
영화 중간...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의 기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줄리안 무어"의 감정표출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지만,
마냥 천사로만 연출되는 "줄리안 무어"의 배역도 이해하지 못 할 부분이다.
왜...? "줄리안 무어"는 감염되지 않는 것인지...
그렇다면 극 중의 줄리안 무어는 인류의 재앙이라는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는 인자를 소유한 단 한명의 인간으로서
어떠한 중요한 역활을 하거나 그런 인물로 비추어졌어야 했는데 감염자들의 뒤치닥거리만 해주다 끝나는 미지근한 영화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영화가 끝날 땐 처음으로 바이러스 증세를 보였던 남자가 다시금 세상의 모든 것이 보이는 것에는 "느닷없이!" 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떠한 계기가 있어서 다시 앞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괜히... 실명되었다가, 또 느닷없이... 괜히... 보인다니...
아무튼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이름이 없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이름을 부를 필요도 없었던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사람만이 이름이 붙여지는 세상의 이치라는 작가의 의도가 심어졌을 것이다.
단 한 장면에 집중하고 책을 보고 싶게 만드는 장면이라면, "대니글로버"라는 흑인 배우에게 시선을 멈추어 졌다.
한 쪽 눈을 가리고 안과로 치료하러 온 대니글로버
한 쪽 눈은 원래부터 시력이 없었는지 안대로 가려진 채로 치료차 왔다가 바이러스로 인하여 다른 한 쪽 눈마저 실명해버린 것일 게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대니글로버는,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지금 이 상태가 어느 때보다도 가장 좋다.
지금 이 순간에 자신과 뜻이 맞는 한 사람만 있다면 영원히 보이지 않아도 세상 살 만하겠다"
대충 이런 내용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전해져 들어왔다.
아마도 극 중의 "대니글로버"는 아무런 존재감 없이 무의미하게 세상속에서 묻혀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잘 난 사람 못 난 사람이 구분없이 평등하게 한 데 어우러 살기에는 누구도 보이는 것이 없는 지금의 현실이 차라리 매우 안정적일 거라는
서민층의 마음을 대변해 준 건 아닐까.
서울대 병원 외래차, 채혈을 마치고 진료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에,
오늘, [눈먼자들의 도시] 원작만한 영화가 없다는 것을 실감케 한 영화 한 편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대학로 거리가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을 보니 일기예보대로 2008년의 첫눈이 다녀가셨나 보다.
하필이면 영화를 보는 시간에...
이런, 첫눈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놓쳐버리다니...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마다 정체불명의 실명바이러스에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라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나왔다.
첫눈이 비로 변해 버린 거리에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 눈은 멀지 않았구나... 참 다행이구나.
병원으로 가기 위해 편의점으로 달려가 우산을 사면서 카드를 건네주고 계산을 했다.
어쩌면,
편의점 가게 점원이 내게서 정체불명의 실명바이러스가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내 진찰등록증을 건네준 간호사에게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나의 주치의인 박선양 박사에게 정체불명의 실명바이러스가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내 혈액수치를 알려주는 설명간호사에게 정체불명의 실명바이러스가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주차장계산원에게 정체불명의 실명바이러스가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병원 처방전을 주고받고 글리벡 약을 받고 계산을 한 약국의 약사에게 정체불명의 실명바이러스가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저녁밥을 함께 먹은 남편과 딸아이에게 정체불명의 실명바이러스가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어쩌면... 눈먼자들의 도시가 되어있지 않을까...
이렇다면, 왜...? 어떻게...? 의 확실한 설정으로 또 다른 영화가 시작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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