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자
몇 해 전에 본, 곽경택 감독의 “친구”라는 영화. 세상을 다 같고 싶던 그 시절, 우리의 학창시절이 한창 무르익었을 1979년 즈음의 배경이었어. 지금은 영화의 내용은 대충 기억을 하지만, 아주 명확하게 각인 된 장면은 아주 오래도록 가슴 한 언저리에 자리하는 장면으로 아로새겨지리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준석(유오성 분)의 면회를 하기 위해 면회 신청서의 관계 란에 상택(서태화 분)이 꾹꾹 눌러 “친구.”라고 적는 장면에서 영화는 막을 내리고 뭉클하게 솟아오르던 뜨거운 눈시울을 감추느라 한참을 일어나지 못 했었지. 어떠한 경우에도 놓을 수 없는 끈끈한 우정으로 맺어진 친구라는 영화 제목을 깊이 새겨진 이 영화를, 나는 감동의 영화 한편으로 손꼽는다.
너를 생각하면 우렁찬 목소리가 생각난다. 우리 학원생들 “시골 풍경, 현장학습”을 너의 근무처인 “옛골”로 정하고 너른 논바닥을 운동장삼아 뛰어다니며 놀던 쥐불놀이가 생각난다. 모닥불을 지펴주어 꽁꽁 언 몸을 녹이며 노래를 부르던 것이 생각난다. 작은 냇가 언저리 돌을 들추며 가재를 잡아 아이들을 놀리며 즐거워하던 네가 생각난다. 감자며 고구마며 따숩게 구워주고 나래비를 선 아이들의 입가 언저리에 묻은 숯검댕이 칠을 보고 즐거워하던 그 해 겨울이 생각 난다. 50켤레의 운동화가 “옛골”의 마루바닥에서 난장판을 벌여도, 괜찮다 괜찮다며 토닥이던 정말 괜찮은 친구, 네가 생각난다. 친구끼리는 미안하거나 고맙다는 말 하는 거 아니라는 말을 하는 네가 생각난다. 가끔 두물머리 들를 때, 내 부모님의 묘지인 팔당공원에 들를 때 내 가까운 지인들과 오며가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옛골”이라는 휴식처가 있어서 정말 든든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너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지난 일들이 아주 먼 옛날에 일어났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니, 어느 날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너, 어쩌면 우리 친구들은 너에 대해 모두 똑같은 꿈을 꾼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태풍 민들레를 헤치고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옛골”로 모이던 꿈을. 이상하게도 “옛골”에서 동창회를 할 때는 비가 오던 걸로 기억되는 꿈을. 우리 사십대의 동창회는 녹슬지 않고 무척이나 활발했기에 하냥 달뜬 마음을 도시락처럼 부여안고, 서로의 앞날을 성축해주었던 꿈을 모두 똑같이 꾼 건 아닐까 어쩌면, 깨어나기 싫은 단꿈이 깨지자 목이 메어 꺽꺽 울고 있는 건지…….
지난달 임원 모임 때 네가 말 했지. “친구 놔두고 먼저 세상 뜨는 친구는 우리 친구 하지 말자!”고 호탕하게 웃으면서까지 으름장을 놓는 너의 말에 내심 뿌듯함을 안고 집으로 왔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모두 그러했으리라. 힘이 잔뜩 들어간 너의 그 말 한마디가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약속처럼 느꼈다. 그리고 너의 여유 있는 웃음을 믿었는데 입춘 지나고 봄이 오는 즈음에 네가 먼저 마음 변하여 떠나갔구나. 친구야, 지금 봄이 오는 땅은 바쁘다. 봄이 오는 하늘은 바쁘다 이렇게 바쁜 계절 속에서도 남겨진 자식과 늙은 노모의 한은 가없이 녹아드는데 무에 그리 바빠 급하게 떠났는가. 너의 영정에 마지막 인사를 하며……. 청천벽력을 맞고 일을 치루는 가족의 아픔을 감히 따를 수는 없어 감춰진 슬픔 섞인 위로의 말을 차마 다 쏟아내지 못했다. 소풍 나온 내 친구의 생은 즐거웠었나. 내 친구의 명복을 빈다. 친구여, 내 친구여, 우리의 친구여, 부디 편안히 잠들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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