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박정대

[박정대]사곶해안

문선정 2007. 11. 28. 18:14

- 사곶 해안

 

                                                      박정대

 

 

 

고독이 이렇게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바다의 문지방 같다

주름진 치마를 펄럭이며 떠나간 여자를

기다리던 내 고독의 문턱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었던 생의 밑바닥

그곳에서 횡행하던 밀물과 썰물의 시간들

내가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던 울음을

끝내 갈매기들이 얻어가곤 했지

모든 걸 떠나 보낸 마음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한 생애를 다해 걸어가야 할 광대한 고독 같다

누군가 바람 속으로 촛불을 들고 걸어가는 막막한 생애 같다

그대여, 사는 일이 자갈돌 같아서 자글거릴 땐

백령도 사곶해안에 가 볼 일이다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 뒤에 남는 건 오히려 부드럽고도 견고한 생

백령도, 백년 동안의 고독도

규조토 해안 이 곳에선

하얀 날개를 달고 초저녁별들 속으로 이륙하리니

이곳에서 그대는 그대 문지방을 넘어서는

또 다른 생의 긴 활주로 하나 갖게 되리라

'詩 읽는 기쁨 > 박정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대]삶이라는 직업  (0) 2011.06.28
[박정대]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0) 2010.05.26
[박정대]하얀 돛배  (0) 2008.05.21
[박정대]고독 행성  (0) 2007.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