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곶 해안
박정대
고독이 이렇게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바다의 문지방 같다
주름진 치마를 펄럭이며 떠나간 여자를
기다리던 내 고독의 문턱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었던 생의 밑바닥
그곳에서 횡행하던 밀물과 썰물의 시간들
내가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던 울음을
끝내 갈매기들이 얻어가곤 했지
모든 걸 떠나 보낸 마음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한 생애를 다해 걸어가야 할 광대한 고독 같다
누군가 바람 속으로 촛불을 들고 걸어가는 막막한 생애 같다
그대여, 사는 일이 자갈돌 같아서 자글거릴 땐
백령도 사곶해안에 가 볼 일이다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 뒤에 남는 건 오히려 부드럽고도 견고한 생
백령도, 백년 동안의 고독도
규조토 해안 이 곳에선
하얀 날개를 달고 초저녁별들 속으로 이륙하리니
이곳에서 그대는 그대 문지방을 넘어서는
또 다른 생의 긴 활주로 하나 갖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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