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이흔복

[이흔복]철새들도 추억 속에 집을 짓는다

문선정 2007. 11. 2. 09:55

- 철새들도 추억 속에 집을 짓는다

 

이흔복

 

 

 

   방죽께 장구니들이 넓으니 고래산 옥녀봉이 그림 같고 하늘이

하늘이 맑아서 제법 암팡진 논나무재 오르막은 굽이굽이 멀었다.

 

   벼훑이가 가을하면 내가 한몫했던 날들이 가고 비가 꽃잎처럼

흩날리고 눈이 쌓여, 눈이 부시다. 눈의 장막 아래 겨울 산은 단

연 우뚝하다. 진산이다. 첩첩산중에서 바다...... 바다를 보았다.

하늘 바다가 거기 있었다. 언젠가 나는 철새들이 날아간 설산을

향해 걷기도 했다.

 

 

   철새들은 놀라서 날아오른다. 철새들은 떼를 지어 날아간다.

때로는 바르게 때로는 느리게 여강의 물결은 물결을 따라 이어

져 속으로만 깊게 흐르고 거울 같은 수면 위를 푸른 하늘이 간다.

 

   마도요, 마도요가 운다. 날이 저물었단다. 이윽고 쑥디모롱이

아득한 가사릿골에서 이십여 리 조포나루를 겨우겨우 휘올아나가

는 물소리 비로소 듣는 철새들은 저녁이면 수중 섬산 고산에 모여

서 잠을 잔다. 꿈이면 보는 저기 저 멀리 밝은 달 속을 사시나무가

울고 소리 없는 소리를 지빠귀 방울새가 듣는다.

 

   바람 불어 내 몸이여, 한밤을 스스로 물결치누나. 강물은 흘러만

가고 나는 강물을 역류하여 되돌아오고 노루발 장도리 하나 있으면

얼럭집 짓고 너새집 짓고 사는 꿈도 종종 온다.

 

   깽깽이풀, 산당화는 한 그루에 꽃 색이 둘 한 꽃잎에 빛깔이 둘이

다. 꽃 피어 만발한 잎 피어 우거진 옛 그림 속에는 내가 들어 산다.

 

 

 

 

                           이흔복 시집 : [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중에서 / 솔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