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름이 엄마인 엄마 / 배용제
갑자기 엄마가 쓰러지자
지탱하던 풍경들이 무너져내린다
정신없이 달려간 응급실에는 착한 고통들만 정직한 목소리로
아우성치고 있을 분,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애를 써도 엄마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눈앞이 탈지면처럼 하얗게 탈색된다
수십 년 동안 그냥 엄마였던 엄마
손발에 못이 박히도록 눌러버렸던 꿈들과
낡은 가죽천막처럼 헐렁한 몸에서
허기진 욕설만 텅텅 울려나올 때까지
숨죽이며 엄마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이름 하나가
온 몸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한겨울 북극점부터 남극점까지 금세 보따리 장사를 다녀와
불쑥 들어서며 야단을 치시던 엄마
구부려도 구부려지지 않던 엄마
까마득한 풍경이 된다
갇혀 있던 꿈들이 한꺼번에 풀리는 혼수상태 속으로
링거 주사를 꽂아 정제된 눈물들을 흘려보낸다
지상에 흐르는 엄마란 이름의 기억,
자꾸만 소독약 냄새가 난다
너무 쉽게 사용해버린 엄마,
어디에 저렇게 많은 꿈이 있었는지
해와 달이 지나가도 여전히 계속되는 꿈
해와 달이 다 식어버린 뒤까지 계속될 것 같은 꿈소겡서
잃어버린 심장과 신성한 욕망과 붉은 음악 따위를 찾았을까
야성을 되찾은 이빨로 차디찬 불을 집어삼키고 있는지
두 번 다시 엄마의 이름을 갖지 않으려
자궁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얼음을 채우는지도 몰라
자꾸만 미세해지는 엄마를 가만히 불러본다
*** 낯선 일본 땅에서 나홀로 나의 어머니를 보내야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오사카 어느 낯 선 병원에서...
그냥 막연히... 수술이 잘 못 되었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었는데
잠시 후면... 영원의 나라로 가실 거라는 짐작은
수술 일주일 후에 그 짐작이 맞아떨어졌다.
어머니...
지금도,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고이는데...
나 죽을때까지 어머니 그리움으로 목이 메여오는 걸 보면
부모님 가셨어도...
내 마음속에 우리 어머니 함께 살아가는 것이 확실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