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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나무의 수사학

문선정 2007. 8. 16. 06:31

 나무의 수사학 / 손택수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 부터

속마음을 곧이 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배우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스승

그가 견딜수 없는 건

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제 22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