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정양

[정양]보리민대

문선정 2007. 6. 9. 21:13

 

 

 

보리민대

 

                   정양(1942~  )

 

 

 

보리알 여물기 훨씬 전부터
겨우 물알이 든 보리이삭을 잎사귀째 잘라
 

죽을 쑤어 먹었다 그게 청맥죽이다
오랜만에 곡기 든 죽을 먹으니
별똥 떨어지듯 눈물이 떨어진대서
별똥죽이라고도 했고, 눈물 섞어 먹는대서
젊잖게 옥루죽이라고도 했다

물알이 틉틉해진 보리이삭을 따서
가마솥에 삶아내어 말려 바순 게
파렇게 쫄깃거리는 보리민대
아이들은 물알이 더 틉틉한 이삭을 골라
어른들 몰래 끼리끼리 구워 먹었다
불에 그슬려 구워낸 뜨거운 보리이삭을
손바닥에 비벼서 후후 불어낸
그 퍼런 보리알도 보리민대다
손바닥에 묻은 껌댕이가 꺼멓게
입 언저리에 묻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보리민대를 허겁지겁 씹어먹었다

며칠만 지나면 토실토실한 알보리밥을
고봉으로 꾹꾹 눌러 배 터지게 먹으리라
진달래꽃 따먹으며 허천나던
지긋지긋한 봄날도 이제는 끝, 아이들은
보릿고개의 마지막 먹거리
행복한 보리민대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손바닥 껌댕이를 옆엣놈 앞엣놈 낯바닥에
다투어 처바르며 낄낄거렸다

 

---태양과 노고지리가 정수리에서 함께 지저귈 때 넘던 보릿고개.

풀뿌리를 캐먹고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허기를 참던 시절.

지금은 쌀이 남아돌지만 뒤주에 쌀 한 톨 없던 적이 있었다.

이 보리를 많이 먹으면 종일 방귀가 터졌다. 어른 아이 다 방귀를 뿡뿡뿡 뀌면서 다녔다.

방귀 한번에 백 열두 방을 뀐 시인 친구(상학)도 있다.

그때 배가 쑥 꺼져버렸을 것.

아 방귀를 뀌지 말 걸. 김제 보리민대 축제가 열리면 그 맛 보러 뛰어가리.

 

                                     <고형렬·시인> / 중앙일보 / 2007.6.7. 목요일       

 

 

정양 :

194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제9회 모악문학상, 제1회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까마귀떼』 『수수깡을 씹으며』 『빈집의 꿈』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눈 내리는 마을』, 시화집 『동심의 신화』, 판소리평론집 『판소리 더늠의 시학』, 역서 『한국 리얼리즘 한시의 이해』 『두보 시의 이해』 등이 있다. 현재 전주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에 교수로 재직중이다. [반디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