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노래 / 임정일
비가 온다
보일러 온도를 올리고
아내가 옷을 벗는다
거친 무게로
주렵주렵 구차한 살림살이를
처바른 아내의 몸뚱이에는
하얗게 실비듬이 피어 올랐다
힘겨운 세상살이에도 아내는
평온할 줄을 안다
알아들을 듯 말듯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아내의 노래
아내의 노랫소리가 나직 나직
샤워실 유리창을 지나 젖은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들 때면
마당에 깔린 모난 돌들이
나붓나붓 제 살을 깎으며 울었다
수없이 밟히고 밟힌 생채기를
비로소 털어내며 울었다
아내는 안다
울 수 있는 건 눈물뿐이 아니라고
깊디깊은 한숨
그 한숨의 깊이로
고여온 바다
나직 나직 길게 뽑아내는 가락 속에
거센 파도 한없이 출렁이고 있다는 것을
임정일 시집 - <아내의 노래> 책나무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