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항아리.../창작강의論 -

시는 제각기 다른 관점에서 표현해낸 예술작품

문선정 2007. 4. 20. 23:02

시는 제각기 다른 관점에서 표현해낸 예술작품


윤제철


1.

평소에 해오던 일은 생활습관의 틀을 벗어나 회기적인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거듭하여 하다보면 몸에 익어 편하고 보다 발전하는 기분에 만족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보다 의욕적이거나 넓은 시야를 가지지 않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시를 낭송하는 모임은 지정된 장소에서 참여하는 시인들이 낭송하고 감상하는 일을 별 변화가 없이 횟수를 거듭한다고 하면 발전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장소를 바꾸어 보고 낭송을 함께 하는 대상을 새로 구하여 감상을 하는 대상에게 공감과 감동을 나누어 보는 가운데 기쁨과 보람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시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애써 노력하는 만큼 수확은 더 많아진다. 열려진 공간을 낭송무대로 활용하면서 독자들과 가까이 하려 동사무소 강당이나 문화회관, 구청대강당 그리고 서울대공원 장미원, 또한 성동구치소나 성동경찰서에서 낭송회 행사에 재소자들이나 전의경들의 열성적인 시낭송대회 참여에 성공하였던 세계시낭송협회의 사례는 최선을 다하는 노력은 어떤 곳에서도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시낭송에 있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는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내용의 시를 써야한다. 어떤 장소에서든지 낭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하는 노력은 시의 창작에 먼저 기우려야 하기 때문이다.

 

늘 써 오던 형식으로 바쁜 일상에 시달려 겉 치례로 포장하여 시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지나지 않는 작업은 진정한 시로써 성공하기 힘들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올림픽에서는 경기마다 순위를 매겨 메달을 주지만 제각기 다른 관점에서 표현해낸 예술작품은 순위를 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남들 보다 빠르거나 힘이 센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읽거나 듣고 설명 없이 이미지가 마음속에 얼마나 많이 스며드는 지가 판정의 기준인 것이다. 


2.

눈이 내린다


되돌아 보이는

세월의 길이만큼이나

하루 종일 눈이 내린다


잊혀진 네 가슴에

눈이 내리고

추억처럼

텅 빙 나의 가슴에

눈이 쌓인다

      - 정정식의 「눈이 내린다」에서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강아지하고 같이 뛰어 놀던 어린시절과 달리 이제는 걱정이 앞선다.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던 시절에는 낭만을 노래하였지만 이제는 미끄럼으로 정체를 유발하고  특히 경사지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바라다보는 본연의 심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눈이 오래 동안 내리는 걸 보면서 지난 세월의 뒤안길을 더듬고 그 길이를 느끼고 있다.

 

평소에 잊고 지내던 친구나 일상의 대상을 향해서 눈이 찾아가 그 위에 내리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비어 있던 화자 가슴에 쌓이는 눈을 바라본다. 뿐만 아니라 살고 있는 주위의 도시가 그림처럼 하얗게 묻혀버린다.

 

보기 싫고 더러운 이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려서 보이지 않게 덮어주고, 어느 덧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가는 어느 하루가 완전히 묻히도록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귀한 시간이 줄어드는 압박감으로 짓눌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닌지?

            

촛불을 들고

하늘역을 어리둥절

찾아갔습니다

남루한 아버지와 형과 아우가

먼저 도착해 있다고

우선 나를 찾았습니다

하늘역에는

부모와 동기간도 없고

만남과 이별도 없고

영원히 사는 것뿐이라고

하늘역에는 고통스런 시를 쓰지 않아도

좋은 시들이 많은 것이라고

      - 박해수의 「하늘역」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발씩 걸어 나가 생활해온 이동경로는 목적지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옳고 바르게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면 천당을 가고 그렇지 못한 생활을 하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쳐주신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리고 손위 어른들의 말씀을 잊을 수 없다.

하늘역은 천당으로 불리는 열차나 버스의 종착역이다. 먼저 도착한 아버지와 형과 아우가 나중에 온 화자를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 영원히 산다는 곳이기에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기 때문에 부모나 동기간으로 구분을 할 수 없다는 그곳이 하늘역이다.

 

생노병사의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온 고통의 체험을 토해내는 시를 써왔던 화자도 하늘역에서는 다시 그런 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악이 있어 선이 귀하고 어둠이 있어 밝음이 더욱 빛나던 생활 터전이었던 추억들이 그리워지게 한다.

 

그러나 화자는 이 곳에서의 생활을 하늘역에서처럼 고통스런 일을 잊어버리고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살아가라 주문을 하고 여행을 하는 모든 시는 하늘역으로 향한다고 했다.

  

어느 하루

열린 가슴으로

벌 한 마리 찾아들어

오래

달콤한 네 사랑에 취했었지


마지막 순간

단아한 모습으로

이별을 말하기 전까지

오래

눈부신 네 사랑에 취했었지

      - 손순자의 「호박꽃」 전문


호박꽃은 꽃 중에 못난 꽃으로 손을 곱고 있다. 사람도 호박꽃에 비유하여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장미보다도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고 존재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흔히 외모지상주의 시절에 살고 있는 현시점에서 말이 안 되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마음씨 가 고운 것이 훨씬 나은 점수를 받는다. 잠시 만나 접하는 경우가 아니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는 동안 은은히 품겨나는 향기가 더 절실하지 않을까?

 

꽃을 보고 달려드는 벌들도 장미보다는 호박꽃에 앉아서 달콤한 꿀을 많이 맛보길 원한다. 한 번 진정한 맛을 느꼈을 때 그 꽃이 시들 때까지 꼼짝을 않고 꿀에 취하여 있었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아도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은 많은 노력이 없어도 남들과 잘 어울려지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 보다 힘들이지 않고도 지낼 수 있어 경쟁력이 없은 편이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만이 내세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피나는 노력으로 경쟁력을 찾고 이겨내려는 욕심이 많다. 곧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뛰어나다고 본다.

        

하늘도 가끔

깜짝한 여우비 뿌리고

시치미 똑 떼는 날 있듯


그릇에 담아 놓은

눈물

반에 반쯤 마음 기울여


그녀도 가끔

발칙한

여우 눈물 뿌리고


여우처럼 달아나고 싶은 날

호랑이에게 시집가고 싶은 날

그런 날 있다지요

     - 문숙자의 「여우비」 전문


여우비는 맑은 날에 어울리지 않게 잠깐 뿌리는 비를 말한다. 일상에서 자기 자신이 해놓은 행동을 내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그런 경우가 있다. 너무 쫓기듯 몰려있는 위압감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다 내린 판단이 성급했기 때문이다.

 

하늘도 가끔은 이치에 맞지 않는 실수를 저질러놓고 시치미를 똑 떼는 날이 있다는 전제는 화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합리화하여 위로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슬픔을 만나 흐르던 눈물을 담아둔 그릇을 약간 비워내듯 울고 나서 새로운 각오로 용기를 내보는 순간의 행동들이 예상된다.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남들은 하는데 나 자신이 못하고 처져있을 때 실망이 능사가 아니어서 나도 미친척하며 저지르는 행동거지가 여우비가 아닐까? 금방 돌아서서 후회할망정 답답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기나 하랴만 여우비라도 내려서 속이 시원하다면 좋은 일일 수밖에 없다. 여우의 깜찍함이 어려움을 풀어내는 도구로 쓰여 지던 어느 날의 일기로 여겨진다. 


3.

위에 수록된 시들은 지나간 일들에 대하여 새롭게 시도해야겠다는 각오가 서려있다. 늘 고여 있는 물보다는 흐르는 물이기를 바라고 있다.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이다. 어느 곳에서 읽혀진다 해도 변함없는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정정식의 「눈이 내린다」에서 눈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지난날의 추억이 담긴 눈이 잊혀졌다가 생각나는 대상의 가슴에 내려 텅 빈 화자의 가슴에 쌓인다. 잠시 동안 바라보지만 보낸 세월을 다 둘러보는 듯 기다란 길이를 느끼게 하는 눈의 선물이다.  

 

박해수의 「하늘역」에서 어디인지도 모르는 초행길, 촛불을 켜들고 찾아가는 하늘역이다. 하늘의 개념을 바탕으로 시인의 이상을 들려준다. 상상으로만 늘 동경해오던 하늘의 이미지로 목적을 잃고 허둥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지를 불러일으켜주는 복음으로 들려온다. 

 

손순자의 「호박꽃」에서 얄팍하지 않고 두터운 사고의 깊이가 보인다.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순수의 세계를 마음속에 담아준다. 피어있는 동안 변화가 없이 은근한 향기로 벌과의 달콤한 사랑을 그려준다. 향이 진하지만 일시에 사라지는 장미를 꾸짖고 있다.

 

문숙자의 「여우비」에서 생활여건이 좋지 않은 주위환경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여우비로 승화시키고 있다. 때로는 내가 아닌 나로 행동을 내 마음에서 내보일 때, 고통을 버리게 된다. 화자는 스스로 여우비가 되어 여우비에 담겨진 의미가 되려한다.

 

시는 개인의 단순한 추억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거나 계절에 따른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시로써 보기 어려울 것이다. 생활에 대한 모순이나 불만을 털어내고 올바르게 일깨워주도록 비판하는 수단으로 표현되어야한다.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독자가 알아차려 생활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시는 같은 주제로 써진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관점에 보고 느낀 내용으로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순위를 매길 수 없는 특성을 지닌 예술작품으로서 그 생명력은 영원하다. 또한 시인의 마음속에 남들이 갖지 않은 정신영역을 확장하고 보다 윤택한 생활의 기반이 되는 역할보다는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함께 누리는 활동까지 해주어야 시인의 사명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 위 글은 문학세계 월간 시평 06년 3월 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