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입던 옷을 다시 꺼내입었다
겨울 가고 봄이 올 줄 알았건만
깊숙이 두었던 옷을 다시 꺼내 펼쳤을 땐
번거로운 마음이 들었지만서두
오늘처럼 검게 그을린 도시에 떠도는
흙먼지와 싸우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학교 옆, 주막.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
삼십촉 백열등
오늘 같은 날엔, 마음 통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동동주 생각이 간절했다.
주점에 있던 학생들 모두... 빗소리에 잠시 수저질이 멈춰지는... 그런 시간...
이런 시간...이 소중했던...
에이!
신 새벽에 ByBy를 하고 나온 그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딴데로 새지 말고, 일찍 들어오라고...
넵! 하고 서둘러 일어서는, 나는 나.
회기역,
[섬진강 따라 벚꽃 십리 길]이라는 현수막에
마음 끌려가는 거 잡느라 애를 써야 했다.
때마침, 춘천행 열차가 지나가는데...
검게 그을린 날의 이런 유혹이란
참으로 참아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
겨울에 입던 옷을 다시 꺼내 입고
내 것도 아닌 카드 하나 들고
신 새벽 1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령처럼 빠져 나온 내가요
[섬진강 따라 벚꽃 십리 길]이라는
현수막이 어둑하게 걸려있는 회기역에서
희미한 풍경에 하롱하롱 취해있는 데요
한 점 푸르름도 남겨놓지 안은 검게 그을린 도시
이런 푸른 빛이 단절된 도시에선 먼 데가 보이지 않아요.
이렇게이렇게
세상에서 제일 낮은음자리로 노래하면서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도시를 헤엄쳐
벚꽃 십리 길 화려한 섬진강에 가면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누런 흙비 말고
흐드러지게 내리는 꽃비를 맞을 수 있을까요
아 아 아아 하고 크게 입 열고 꽃비를 마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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