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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정]이팝꽃이 피었습니다

문선정 2018. 5. 16. 03:25

이팝꽃이 피었습니다

문선정

    


 

   1.

   4월에도 눈이 내렸다. 폭설이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한창 피어오르던 산벚꽃 진달래꽃 떨어지는 소리가 싸락싸락 들리는 것 같았다. 꽃잎이 산자락을 적시고 지나간 불안의 거주지에 파국의 용사처럼 혓바닥을 빼물고 있는 수많은 꽃잎들을 가여워 해도 될까.

   떠돌이 바람이 산천을 넘어와 따순 손을 내밀면 추위에 오래 갇혀 지내다 처음 나온 것처럼, 나는 나무의 굵은 몸속으로 끌려들어가 나무의 속껍질 같은 질긴 문장을 옮겨 적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 이팝꽃이 피었다. 폭설처럼 꽃이 피고 있다.

   적당히 덥혀진 빛과 적당히 소슬한 바람이 뒤섞여 꽃잎을 수정하는 중이다. 마트로 가는 길, 공설운동장을 지나 소요산 가는 길, 다시 터기리 마을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거리에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나무는 꽃을 피워 밥을 짓고 있었다.

 

 

   2.

   나무에도 영혼이 있을까?

   나무가 인간의 운명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부터 흙과 접촉하며 양분을 저장하는 뿌리, 삶의 시간들이 단단히 다져지는 굵은 원기둥, 늪과 같은 허공을 더듬으며 오른발 왼발 호흡을 맞추며 전진하는 나뭇가지를 빗대어 우리는 외로움을 배우고 희망을 탕진하기도 채우기도 한다.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에 이르기까지 삼세계를 이어주는 나무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창조주는 우주의 한 축인 한 그루 나무에도 영혼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이팝나무 줄지어 서있는 거리를 지난다. 이팝꽃은 쌀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쌀나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팝나무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밥물이 끓어 넘치는 것처럼 흰 꽃이 수북수북해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나무는, 곳간이 차고 넘치도록 쌀가마니로 가득 채운 욕심으로 그득 찬 양반댁처럼 보인다. 어떤 나무는 이파리만 무성하고 쌀 몇 대박 쟁여놓고 근근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찢어진 스커트처럼 구멍 난 양말처럼 가난으로 허덕거려 보이는 나무도 있다.

   똑같은 햇살 똑같은 바람을 먹고 살진대, 어떤 나무는 비척비척 자라나 헐거워 보이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잎과 꽃도 적당히 덜어내고 가지를 곧게 뻗어낼 줄도 알고 생의 모퉁이를 돌 때 융통성 있게 휘어질 줄도 아는 수려한 나무도 있다.

   여러 나무의 모양새도 각양각색이지만, 특히나 이팝나무 이미지에서 잘사는 나무, 못사는 나무, 적당히 잘 살아가는 나무로 부와 빈곤이 확연하게 보여 지는 건 아마도 쌀과 연관되어 있는 나무의 상징 때문이지 싶다.

   어쨌거나 나는 나무의 생과 내 생을 끊임없이 비유하면서 중얼거리며 달력을 넘기고, 사소한 쓸쓸함 속에서도 밥을 먹고, 커피를 홀짝이며, 나무를 보고 나를 알아채는 영혼과 영혼의 그 어디쯤에서 가끔씩 만나질 테다. 그리고 우리 너머의 신이 있는 그 곳으로 도달 할 때까지 나무의 형상으로 닮아갈 테다.

 

 

   3.

   달구지처럼 터덜거리는 자동차를 타고 연두마을을 내려와 다시 시내로 나간다. 차창을 열었다. 요즘 핫 한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OST <stand by your man> 노래가 나온다. 이팝꽃이 배경이 된 풍경 사이로 나와 함께 늙어가는 남자의 흐트러진 흰 머리카락이 잠시 움직였다. 때마침 흘러나오는 멜로디와 풍경의 곳곳을 쓰다듬어주던 바람과 골고루 잘 섞여진 짧은 순간. 이런 사소한 것들이 끼어드는 찰나에 참으로 오랜만에 , 행복하구나!’ 라는 느낌이 왜 간지럽게 굴러가는 거지?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하듯 중얼거린다.

 

   “이팝꽃이 피었습니다!”

 

   째깍재깍, 지금 이 계절 행복의 색은 흰 색으로 피어오르고 떠다니는가 보다.

   자, 그러면 다시 한 번,

 

   “이팝꽃이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