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의 정신
박지웅
소 팔아 상경한 아비가 소처럼 일하고 돌아온 저녁
그림자가 뒤로 천천히 길어지더니 무거운 쟁기처럼 땅에 박히었다
앞장선 아비를 따라 우리는 여물통 같은 한강에 입을 처박았다
그곳에 모인 소 무리를 둘러보며 아비는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하거라 너는 커서 소가 되면 안 된다
그 한 마디에 마음이 모였다가
돌멩이 맞은 듯 퍼져 나가곤 했다
쓸쓸한 마음이 몸을 부비면 가슴이 시리다는 것을 알았다
한 입 뜯으면 강은 또 묵묵히 우리 입 앞에 여물을 세워놓았다
시린 네 개의 무릎을 가슴 안에 끌어넣어 데우던 아비의 밤
아비는 가축의 정신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살렸으니
한강의 기적을 일군 소들과 함께 이제쯤 인간의 국경으로 들어갔으리라
코뚜레를 벗고 어느 전생의 저녁에 대하여 쓰는 밤
아비가 죽을 때까지 나는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박지웅
1969년 부산에서 출생. 추계에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시와사상』신인상 수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즐거운 제사> 당선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2007년 /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