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푸른 창문들

푸른 창문들

조용미

  밤안개가 들을 가득 지나간다

  전봇대들이 그 아래 가로수처럼 발을 담그고 서 있다

  나는 나의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다시 연구해야겠다 그래서 이 더렵혀진 세상에서 나를 구출해내야겠다

  태풍이 몰아치던 날

  정적 속에서 파랗게 빛이 새어 들어오던

  낯선 곳에서의

  그 여러개의 창문窓門들 

  어둠 속에서 나는 천천히 일어나

  바람을 대면하러

  순교자들의 그림이 새겨진 푸르고 시린

  창窓의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욱체를 지닌 인간의 비애를 신은 알기나 할까

  삶이 이다지도 생생生生한데

  통증이 이리도 생생生生한데

  이걸 모르는

  신은 가여운 존재

  죽도록, 그러나 살아 잇을 수밖에 없도록

  아픈 인간들은

  비명을 지른다

  초사흘 달처럼 고독한 삶

  겨울 들판을 나는 기러기처럼,

  치지 못하는 기타 줄처럼

  고독한 삶

<시집 :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 문학과지성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