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窓 .../지상의 불꽃 -

눈물, 한숨, 기쁨, 환희, 고통의 서사 [프리다 칼로]의 그림

문선정 2010. 4. 3. 21:09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멕시코 출신. 1907 ~ 1954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사후에도 멕시코 미술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만
기억되었었다.
그러나,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으로 프리다 칼로의 존재는 새롭게 부각되고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국보로까지 지정하였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937) 프리다 칼로를 말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멕시코의 벽화운동의 거장 [디에고]는 총 116점의 벽화를 남겼다,

 

<프리다와 디에고>

 독일인 이었던 아버지가 지어주신 "프리다"라는 이름은 "평화"를 의미하지만

그녀는 평생 한번도 평화롭게 산 적이 없다.
 7세 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게 되었고

18세 때엔 전차 충돌 사고로 길다란 쇠봉이 그의 배를 관통하여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이 사고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주요한 주제로 자리잡는다.

 

[조부모와 부모와 나, 1936]

1936에 그린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독일인이었던 아버지와 인디오의 피를 물려받은 어머니를 둔 프리다는 멕시코의 원주민이었던 외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았다. 프리다의 이 작품속에서 가족의 뿌리와 멕시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낸 작품이다.
<나의 조부모와 부모와 나>에서 그녀는 자기네 집 정원에 서있는 발가벗은 조그만 소녀로 표현되어 있고, 칼로의 오른 손에 있는 빨간 리본의 이미지는 이후에도 자신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유대감의 시각적 표현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신의 혈통과 뿌리에 대한 관심은 1932년에 그린 <나의 출생>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충격적인 대담함을 보인다. 그림 속의 어린아이는 안으로 모아진 두터운 눈썹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칼로 자신임을 알게 해준다. 벽에는 비탄에 잠긴 어머니, 즉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며 흐느끼는 슬픔에 찬 마리아 상이 걸려있다. 한편 우아하고 담백한 색조와 벽과 베개의 핑크빛 레이스는 화면 전체의 긴장된 분위기와는 다르다. 사실 이 그림을 그릴 즘에 어머니가 죽었고, 결국 칼로 자신의 탄생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태어나지도 못한 그녀의 아기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머리를 자른 자화상>

디에고가 가장 사랑했던 자신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각별히 좋아하는 멕시코풍의 드레스 대신 남장을 한 모습으로 남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즈음... 외로움, 우울증, 과음, 트로츠키 암살 사건으로 받은 
수없는 경찰 심문 관련 등으로 프리다의 건강은 심하게 악화됐다.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을 많이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그녀는 고통을 극복하고자, 움직이지 못할때는 침대 밑에 거울을 달아 놓고 거기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통해 심리 상태를 표현했다.

 

 [My Nanny and I, 1937. 유모와 나]

1937에 그린 <유모와 나>에서 유모는 가슴을 드러낸 채 벗고 있고, 콜롬비아 전기의 Teotihuancan 돌 가면을 얼굴 대신에 쓰고 있다. 유모의 모습은 토착적인 모신(母神)의 재현을 회상케 한다. 그리고 유모는 작가 자신의 멕시코 혼혈의 원류의 상징이다.

"[디에고]는 건축가, 나의 아이, 애인, 친구, 동료, 남편,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다.

그는 나 자신이며 나의 우주이다" 

라고 말했듯 프리다의 디에고에 대한 감정은 양면적이었다.
 그녀는 평생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는데

하나는 자신을 20년 간 움직일 수 없게 만든 전차 사고이며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와의"만남"

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1949년의 [디에고와 나]

그녀의 긴 머리는 저절로 목 부분으로 감아져 있으며,

그녀를 목을 졸라 죽일 정도로 그녀를 위협하고 있다.

 

 

<우주, 지구(멕시코), 나, 디에고, 그리고 졸로틀의 사랑의 포옹>
   이 그림에서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한 모성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비참하고 혹독해질 수록 화려하게 치장했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강하고도 부드러운 그녀였다.

그녀는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이며 멕시코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이다.
 1995년 프리다의 자화상이 35억에 팔려 가장 비싼 라틴 아메리카 미술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40년대 이후로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 주위를 많은 애완 동물이 나타나게 된다. 그 해에 같은 주제의 그림들이 다수인 것으로 보아 그녀가 다시 유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원숭이와 함께 한 자화상>, <조그만 원숭이가 있는 자화상>등에서 그녀와 연결된 실크 리본을 감은 애완 동물들이 나타나는데, 매우 절망적으로 보인다. 칼로의 원숭이는 포기한 아이들 역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커튼 사이에서-레온 트로츠키에게 헌정한 자화상]

 

 1951년 작 이후로 정물에서의 색채와 리얼리즘은 그녀의 건강 악화로 인하여 극도로 쇠퇴해지면서 소재도 정물화가 많아지게 된다.

 

[몇 개의 작은 상처들] 1935 작.

 

 [헨리 포드 병원]

<헨리포드 병원>은 1932년 디트로이트에서 그린 것으로 피투성이 자화상 시리즈 중의 첫 번째 작품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이 작품에 대하여 '미술사상 전례 없는 일련이 걸작들로 여성의 가치를 질적으로 고양시켰다.'고 언급했다. 이 그림에는 고독감과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표현을 수평선 쪽의 산업 사회의 풍경에 의하여 나타내고 있다. 칼로가 쥐고 있는 리본의 끈은 유산할 당시 그녀의 감정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사물들로서 달팽이는 임신에 실패하게 되는 긴 유산의 과정의 상징이다. 또한 배경이 공장지대는 기술적인 진보의 상징으로서 화가 자신의 인간적인 운명과의 대조적인 특성을 표출하고 있다. 비록 그림에서 개인체험들이 세세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생활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는 칼로 에게 있어서 생동감 있는 사진과 같은 정확성보다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칼로의 '고통'은 평생 그녀 작품의 주제가 되어 그녀의 작품은 미술세계에서 다소 동떨어진 세계를 보이기도 한다.

 

<나의 탄생>

그녀가 실질적인 고통이나 죽음을 표현한 반면에 <기억(memory)>에서는 정신적 고통의 상징으로서 육체적 상처들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병원에서 유산한 직후 어머니 상을 당하고 그린 그림으로 죽은 모체로부터 방금 태어나고 있는 프리다 자신 역시 이미 생명을 잃은 모습이다.가수 마돈나가 이 작품을 구입했다.

이러한 자신의 혈통과 뿌리에 대한 관심은 1932년에 그린 <나의 출생>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충격적인 대담함을 보인다. 그림 속의 어린아이는 안으로 모아진 두터운 눈썹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칼로 자신임을 알게 해준다. 벽에는 비탄에 잠긴 어머니, 즉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며 흐느끼는 슬픔에 찬 마리아 상이 걸려있다. 한편 우아하고 담백한 색조와 벽과 베개의 핑크빛 레이스는 화면 전체의 긴장된 분위기와는 다르다. 사실 이 그림을 그릴 즘에 어머니가 죽었고, 결국 칼로 자신의 탄생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태어나지도 못한 그녀의 아기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What the Water Gave Me, 1938. 물이 내게 주는 것]


 

 [여동생 크리스티나 Christina의 초상] 1928 作.

디에고 리베라의 지칠 줄 모르는 애정행각은 그녀를 멍들게 했고, 고통의 도가니로 몰고갔다.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디에고의 깊은 관계를 알자 큰 충격을 받은 프리다는 별거에 이르렀고 이혼을 하게 된다.  프리다는 이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 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940년 디에고와 다시 재결합을 시도한다.

 

 <두 명의 프리다>

6살때 소아마비를 앓고 18세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온몸이 망신창이가 된 후칼로의 나머지 삶은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 것 같다.

<두명의 프리다>는 항상 그녀안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 그림은 두 가지 상반된 개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작품은 이혼한 바로 직후에 완성된다. 두 모습 중에서 실제의 프리다의 모습은 멕시코 전통의상인 테후아나를 입고 있고 그녀 옆에서 그녀 자신의 분신으로 유럽풍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들 두 연인이 드러내놓고 있는 심장은 하나의 혈관으로써 연결되어 있고 혈관의 끝은 분리되어 유럽인 칼로의 드레스에는 피가 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그녀가 환상과 꿈의 세계에서 살면 이 세계에서 자신을 빼닮은 이중인물을 설정함으로써 고독에 대한 보상을 찾는 것이다.

 

 [엘로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

 

 <뿌리 혹은 거친 땅> 금속에 유채 30.5×49.9cm 1943

 

[다친사슴] 1946 作.

온 몸에 화살을 맞은 사슴의 얼굴은  사람이다. 아니 프리다 칼로이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자해를 하고서도 초연한 얼굴이다. 오히려 보는 사람들이 고통스럽다.

비록 그림에서 개인체험들이 세세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생활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는 칼로 에게 있어서 생동감 있는 사진과 같은 정확성보다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칼로의 '고통'은 평생 그녀 작품의 주제가 되어 그녀의 작품은 미술세계에서 다소 동떨어진 세계를 보이기도 한다.

 

 

[두 세계 사이에서] 1932년 作.

 

[내 치마가 저기에 걸려있다] 1933년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