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는 사랑/문숙자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피곤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데 반드시 이유가 동반되어야 한다면,
죽어도 아깝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좋아했다가
이별 후에 떠맡을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부어도 부어도 모자랄 사랑을 쏟아부어야 할 "내 가족“에게 그 시간을 받치고 싶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저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베풀어 줄 것일까를
잔뜩 기대하며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위험한 인간관계가 어디 있을까.
물질과 자신의 이익을 바라는 인관관계 보다야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내 가슴에
친구처럼, 꼭 필요한 사람으로, 스승처럼 자리 잡고 들어오는 사람을 가졌는가?
라고, 지금 나 스스로에게도 물어본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어느 한 사람 때문에 서운하고 실망하고 미워질 때는,
나 또한 그 사람에게 뭔가를 잔득 기대했으므로 돌이켜보고 반성하면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로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언어를 갖고 서로 전달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홀로 살 수 없기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 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경쟁으로 피폐해 져가는 사회 속에서 스스로 정치적 동물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더불어 하면서.
아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관계성 속에서 생활의 필요조건이
최소한의 생존의 보장이 되어야만
행복의 조건이라는 단서를 달고 사회적 동물로 사는 것이리라.
명령과 복종의 관계로 좌지우지 되는 것은,
처음엔 나 스스로가 즐거워서 복종하는 것 일 수도 있겠지만,
요구의 명령과 복종의 사이에서 자라나는 울분과 배신, 경멸과 적의를 쌓으면서까지
권력의 체위를 끝없이 휘두르는 사회적이 아닌 정치적인 동물이 맛보는 행복을
누가 오랜 기간을 음미하면서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사랑과 행복은 함께 누려야만 진정한 행복이렷다.
현실이 변화되고 시간이 흘러가는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사회는
복종과 군림의 인간관계로 이어진 군대도 아니고
배신, 투쟁을 하면서 높은 권력을 위해 지배하는 집단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데는
각자의 매력은 저마다 있지만, 딱히 좋아해야 할 그럴만한 이유를 찾아 봤다.
그 사람은 왜?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좋은지!...
그러나, 단서를 달고 싶지 않고 달아야 할 단서도 없다.
그냥, 좋다! 그래서 그냥 좋아하기로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듯 부리는 값지거나 값 싼 물건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의문의 여지도 없이 그냥 더 많이 좋아지기에 마련이지 않을까.
지난 시간 문협의 일을 보던 때를 기억해 본다.
해도 해도 날마다 밀리는 일거리, 멀뚱멀뚱 처신만 바라고 있는 임원진들,
아무런 말도 없는데 아무런 조건도 소리도 없이
도움을 주고 바던 사람이 성00와 나 사이의 감정이다.
혹시 이 사람은 여자인 나에게 다른 흑심을? 이런 모순적인 생각도 해 보았지만,
사람의 됨됨이는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아도
절대절명의 신뢰와 함께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저절로 교감한다.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이유 없이 그냥 좋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말이지만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중
성00씨의 수첩에 가장 든든하고 믿음 가는 1순위로
내 이름이 적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부끄러웠지만,
한 겨울에도 춥지 않은 가슴으로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었다.
가족이 아닌 인간관계에서 이런 느낌으로
내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겨 주는 사람이 주변에 몇 있겠는가.
문학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로 맺어진 성00씨 외의 또 다른 몇몇 사람들과의 만남.
이런 사람들의 만남에서는 문학이 주를 이루는 대화 외에는,
색다르고 다른 사적인 말이 오고가야할 시간이 있었을까?
아니, 없었다.
때로는 격의 없는 친구처럼... 다정히 충고도 해 주는 꼭 필요한 사람처럼... 엄격한 스승처럼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관계를 너와 나의 입 살에 올려놓고
불순한 의도의 말을 요리하고 나누어 주는 어떤 이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어떤 목적의식으로 처음부터 나를 이곳에 데려왔는지요.
[목적의식]도 없었고, [정치적인 동물]로도 이용하지 않았다면,
나를 상대로 배신 또는 미움이나 적의를 가리는 언행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바랐던 아무것도 없었기에 미움도 적의도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다만, 서로가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더 좋았을 결과를 아쉽다고는 하지만,
누가 누구를 예뻐했고 따랐으며 배신했다는 그런 말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B가 A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야만
A에게는 B가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B가 A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A가 B에게 너는 내 제자야.
라는, 이런 논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B는 계속 학교를 다니고
또한 졸업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뒤에서 그 사람 전혀 선생님 같지 않아! 라고 말 하는 학생에게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선생님은 더욱 선생이 아니지요.
나는, 가족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도 피곤한 일이기에
사람보다는, 산이며 들판이며를
구름을 무늬로 해오르고 노을 지는 하늘이며를
어제까지 그리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도 그리 할 것이고,
내일은 더 많이 눈을 맞추기로 다짐한다.
눈에 보이는 자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