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성]비의 발바닥
비의 발바닥
김경성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수없이 많은 빗방울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만 비의 발바닥을 보고 말았다
마치, 키질을 하는 것처럼 떨어지며
길바닥에 한번 튕겨 올라 납작 엎드리는 것이다
웅덩이에 빠진 것은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둥근 무늬가 퍼져 나가
고요가 무너지고 경계가 지워지고 있었다
수많은 비의 발바닥이
지상에 지문을 남기거나 발바닥에 새겨놓았던
구름의 지문을 다 거두기도 전 또 하나의 자서를 쓰며
몸을 뒤집었다
그들의 말이 문장을 만들고
한 권의 책이 되어 흘러갈수록
강은 더 깊어져서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네 몸의 가장 낮은 발바닥을 볼 수 없듯이
너 또한 나의 발바닥을 볼 수 없다
살아온 만큼의, 걸어온 만큼의, 시간의 자국이 새겨져 있는
두터운 각질을 벗겨 낼 때가 되었다
이 세상에 나만의 무늬를 그려 넣고 가끔,
그 향기로움에 목이 메고 싶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의 발바닥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발바닥이 어느 곳에 닿는 순간 또 하나의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무의 발바닥인 나뭇잎으로, 꽃의 발바닥인 꽃잎으로
그물무늬를 그리는 것처럼
*** 이름 붙여진 모든 것에는 몸이 있다는 것을 이 시를 읽고 여실히 알았다.
그렇구나. 비는! 수직으로만 그어지는, 끊으려해도 끊어지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선인 줄로만 알았는데...
비의 발바닥, 나뭇잎의 발바닥, 꽃잎의 발바닥...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생을 김경성 시인은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사유를 찾는 김경성시인의 시선에 나는 탁! 하고... 무릎을 쳤다.
이런 눈물나게 아름다운 詩를 발견한 오늘.
괜히...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