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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섬말시편-갯골에서

문선정 2007. 8. 16. 06:18

섬말시편 - 갯골에서 / 김신용


소래 포구에서 뱀처럼 꾸불텅 파고든 갯골을 본다
뻘이 제 육신을 열어 터놓은 저 물길
서해에 뿌리 박은 거대한 나무처럼 보인다
느티나무가 고목이 되어서도 힘차게 가지 뻗은 듯하다
한 때, 소래 벌판의 염전들은 그 가지에 매달려 푸른 잎 나부꼈을 터
결 고운 옹패판 위에 희디흰 소금의 결정들을 수확했을 터
지금은 나뭇잎 다 져 앙상한 고사목 같은 형상으로 놓였지만
해주도 소금창고도 허물어져 갈대밭에 누운지 오래지만
뿌리는 아직 살아 밀물 때마다 염수를 밀어올린다
스스로 무자위 밟아 수액을 끌어올린다
뻘밭에 세한도 한 폭을 새겨놓기 위해
바다는 오늘도 墨紙가 된다
그 갯골이 커다랗게 입 벌린 상처처럼 보이지만
아물지 않는 손톱자국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뒤틀리고 휘어진 蛇行의 갯골에는
아직 새 날아온다 뭇 새들 갈대밭에 집 짓는다
뻘 속에는 혈거(穴居)의 게들 , 흘림체로 별사를 쓰듯 기어 나온다
저 뿌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墨紙가 살아 있는 그늘이라고

 

<2007년 시와시학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