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최창균
[최창균] 무거운 책
문선정
2007. 5. 1. 23:21
- 무거운 책
최창균
그가 일생을 두고 완성하려던 책을 바라보네
오로지 한땀 한땀 삶을 잘 엮어내기 위하여
수시로 그의 손이 간 쭈글쭈글한 가죽의 책표지
책의 겉장,
그 이마에는 아무런 제목도 붙여지지 않았네
불 꺼진 창처럼 내게서 어두워져가는 이마 앞에서
아픈 생각으로 무릎 끓고 있던 나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책으 제목처럼 큰소리로 울부짖었네
아무도 펼쳐보지 못했던 내 삶의 백과사전,
그 두꺼운 아버지의 이마에다
내 떨리는 손 얹어보았네
대리석처럼 차갑고 무거운 생각들이 소용돌이쳤네
마치 그 책에서 무엇인가 찾아낸 것이 있다는 듯
얼른 내 이마에 손 짚어보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왜 이리 슬프기만 한지요
한참을, 한참을 이렇게만요
그것도 잠시,
나는 아버지가 남긴 저 절절한 삶으 시
조막막한 내 이마, 그 가업의 책에다 기록해두었네
비로소 아버지으 무거운 이마가 책을 꽝꽝 덮어버렸네
최창균 시집 /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