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해서
- 어머님이 집으로 가셨다.
매 번, 미안하다시며 도망치듯 가시는 어머님이다.
약을 안 갖고 왔다며...
속옷을 안가져 왔다면....서.
정히 불편하시면 전화한다면...서.
오후 다섯 시.
며칠 전부터, 아니아니 오래 전부터 벼르고벼르던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날카로운 봄 햇살의 날이 서서히 식어갈 무렵... 오후 다섯 시. 집을 나섰다.
- 아직도 푸릇한 싹이 나오지 않은 보리밭이며
유채꽃 밭의 땅속이 근질거림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강변로를 거닐다
한무더기의 꽃을 보았다.
바이올렛 향기가 물씬 내게로 오는 것 같아... 멈추어 섰다.
아마도 전화를 하는 아저씨는... 꽃만 찍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 거꾸로 세상
물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아니 이 곳과 똑같은 세상이 있는 것을
인간만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 유채꽃은 아닌 것 같은데... 야생화 군락지인 것 같다.
- 겨우내 버려졌던 땅이 마구마구 봄을 잉태하더니 슬슬 몸을 풀어내고 있다.
- 유채꽃 파종을 심어놓은 곳에 자전거 바퀴자국과 발자욱이 선명하다.
이것도 상처다.
선명한 상처...
- 이 풍경을 말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님프 생각이 났다.
태양의 신 아폴로는 냇가마다 은광의 도시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이 도시 안에... 님프가 있을 것 같다는...
- 가끔 걸어서 산책을 나오는 곳이 딱 여기까지였다.
이 곳에서 더 이상은 발자국을 떼지 않고 되돌아갔던...
오늘도 여기에서 멈출까 하다...
저 징검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까 하다가.
크게 용기를 내어 걸었다.
걷다보니, 잘 했다는...
- 허벅지 뒤가 뻐근해 오는 걸 보니... 내 체력에 무리했나 싶었다.
저기 저기. E-마트도 보이고, 양주 경찰서가 보인다.
- 둑 방 위로 보이는 저것은 풍향계인가...?
순간, 집에서 꽤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불안하기도 두렵기도...하고
뒤로 돌아 다시 가기엔, 이미 늦었고...
가다가다 도로로 오르는 길이 있으면 올라야겠다 마음 먹은 곳이다.
- 덕정리 강변을 지나 융보아파트로 오르는 길을 올랐다.
덕정리 시내로 들어왔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장터에서 들리는 장돌뱅이 음악이 들린다.
덕정리 장이 서는 날이란다.
차를 타고 이 곳을 무수히 지나다녔지만
장날이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다녔다.
무심한... 정말 무심한 나다.
덕정리 장은 2일과 7일 장이란다.
뽀얀 털을 가진 강아지 두 마리와 토끼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
- 시끄러운 음악 가운데서도 새의 소리는 맑다.
다홍색 새가 눈에 확 들어왔다.
- 순간, 삿갓모자가 내가 갖고 싶은 베트콩 모자인 줄 알고 다가갔다.
멧돌이랑, 바구니, 효자손, 도마, 장을 담글때 쓰이는 장주걱들과 채반들이
장터의 분위기를 더욱 돋구워주는 것 같다.
- 호! 곰방대와 참빗, 얼레빗... 새집.
다음 장날엔, 이곳에 와서 새집을 사야겠다.
- 미꾸라지.
나, 추어탕 무지 좋아하는데... 이 미꾸라지를 보니까 웬지 먹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 자주 지나가는 이 곳이지만, 늘 죽어있는 장터 골목이었다.
오늘 처음, 사람이 붐비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렇게 생기있는 시장 골목이라는 것을...
뭐든, 지내보고 겪어보고 눈으로 봐야 속내를 알 수 있다.
이곳서 나물도 사고, 모자도 사고, 떡도 사고...
- 장터 구경 한바탕 신나게 하고,
'이제, 집으로 가야지.' 하고 하늘을 보았다.
노을도 한바탕 진하게 놀다... 어느새 어둠으로 녹아들고 있다.
핑크색으로 물 들었다 이제 어둠속으로 살살 녹아드는 하늘.
그렇구나! 나는 오늘 핑크빛 하루로 마감을 하는 구나!
내가 좋아하는 노을이... 오늘은 핑크빛으로 물들었구나!
저 예쁜 노을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기를 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구나!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이 시간, 무척이나, 곱구나! 이쁘구나!
- 전철을 타기 위해 덕정역으로 들어왔다.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집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제, 집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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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이 목적이었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생각하면서 정리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산책로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한 발짝 한 발짝 운동화를 신은 발을 가볍게 내딛을 때... 시간과는 상관 없이 이 장소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표시나지 않게 불안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이 길은 자연을 가슴 가득 안은 채, 스치는 바람을 가르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정해진 시간 내에 산책을 끝내곤 했었지 걸어서 산책을 하는 것은 오전의 여유 있는 시간이거나 휴일에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해서 2, 3 백 미터를 왕복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 오늘만큼은, 걷고 또 걷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서 차를 타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마음이었다. 지금의 짜여 진 계획대로 내 몸이 따라 줄지도 의문인 채... 그렇지만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추스르고 발길만은 가벼웁게 걸어 나갔다.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바람막이 겉옷을 입었다. 가끔씩 바람이 성근 모자를 달싹거려주는 그런 간지러움이 싫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머리를 어지럽히는 고민거리를 정리하기 위해 집을 나선 거였으므로 뭐든, 가라앉은 내 기분을 달래주는 간질거려 주는 것을 기대하고 떠난 발걸음이었다.
가끔씩 쉴 때는 누군가에게라도 전화를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는데 주머니를 더듬거리다 문득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웃었다. 이럴 때... 가까이 지내는 지인에게,
"나 지금 여기 있어요. 뭐해요? 여기 너무 근사하고 좋아요! 혼자 괜히 왔나 봐요. 다음엔 함께 해요!"
라거나, 또는 가까운 친구에게
"뭐하니? 나 지금 갈까? 시간 있니? 할 말이 많은데... "
라는. 이런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전화도 없다는 사실에 가슴 서늘한 싱거운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걸으면서... 걸으면서... 계속 걸으면서... 자꾸 생각이 깊어질수록... 혼자 오기를 정말 잘 했구나! MP3도 핸드폰도 없는 것이 다행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관계》...라는 단어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람과 사람 관계, 사람과 사물 관계, 사물과 사물의 관계. 이런 관계들이 서로 연결 고리로 이어지면서 이해관계가 성립된다.
사람과 사람 관계만큼 어려운 관계가 또 있을까.
내가 누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누군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자 할 때 끊이지 않는 관계를 위해 아주 소소한 일상이라도 함께 나누고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나...? 아니다! 이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적어도 친하게 지냈다. 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떤 일이든 이해 할 수 있어. 우린 이런 사이니까... 이런 사이니까... 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다가 쓴 소리가 아닌, 거침없이 내쳐버리는 소리를 내는 사이가 내 상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수록 적절한 선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과의 이해관계야 의식주를 함께 하는 인생의 길을 함께 가는 공동체로서 싫든 좋든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당연 정해진 관계로의 원칙하에 인정을 하겠지만 모든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상대의 사생활을 관여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거니와, 나의 사생활까지 간섭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개인의 정서적인 영향으로 삶을 꾸려나가기 마련이다. 요즘 흔히들 하는 말로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인간관계의 우등생이라는 말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의 인간관계는 그리 점수가 높은 편이 아니지만, 아주 나쁜 것도 아니다.
첫째는, 나는 낯을 무척이나 가린다. 나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남편 역시 내 나이 스물에 처음 만나고부터 5년 연애를 할 때까지 그 앞에서는 음식을 먹지를 못 했었다. "먹다가 사래라도 걸리면 어쩌나...? 음식물을 흘리면 어쩌나...? 소리가 나면 어쩌나...?" 이러면 어쩌나... 저러면 어쩌나... 하면서 5년 연애 끝에 결 혼을 한 후에도 한 1년 동안을 쑥스러워 먹는 자리에서 무척이나 어색한 태도를 보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둘째는, 나의 첫인상과 말투가 쌀쌀맞아 보인다는 이유로 원만한 관계를 성립시키기에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오랜 시간을 거쳐 그렇게 깊어지지 않은 얕은 관계 속에서도 감정의 희비곡선을 느낄만한 약간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원하지만, 어디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것인가. 어쨌든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얕고 깊게 형성된 인간관계속에서도, 가족이 아닌 타인과는 서로의 생활에 관여를 주고받을 정도의 인간관계를 나는 절대 원치를 않는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여태껏 살면서 앞집에 옆집에 커피 한 잔 마시러 다니는 것도 싫어한다. 설령 한, 두 번 갔다가도 남편 출근 시키고부터 반나절 이상의 한바탕 수다가 끝나고 난 후에 홀로 되었을 때처럼 허무함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떠도는 말이... 저 여자는 긴 머리 휘날리면서 매일 놀러 다닌다는 말을 들어도 나는 외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은, 미장원에 자주 다니기 싫어서이고, 또, 다른 머리 스타일을 바꾸 봤어도 머리 손질이 서툴어 매일 실패하고 말아서이다.. 대부분 내 주변의 정당한 일을 보러 다닌 것이고 시댁 일에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를 하는 편이므로...
이런 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의 내가 사는 방식이 정답만은 결코 아니다. 라는 것도 안다. 삶에는 정답이란 없으므로.
나 같은 사람만이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어서 多方面으로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야 이리 섞이고 저리 섞이면서 여러 사람을 대하면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질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수 있겠지. 만은, 나는 많은 류의 사람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유년시절에는 약한 몸으로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었고 새 학년으로 올라 갈 때와, 봄, 가을에 거쳐 소풍을 따라갔던 기억... 5학년 2학기 때, 새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갔다가도 펄펄 끓는 열을 이기지 못 해 되돌아오곤 했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해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던 시기였을 거다. 여자아이들 모두 부채춤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따라하고 싶었던 욕구가 얼마나 강했는지... 다른 친구가 문방구에다 예약해놓은 얇고 하늘하늘한 한복을 내가 찾아들고 집으로 왔었다. 그 때, 그 친구는 울고불고 한복을 내가 훔쳐갔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고 어머니는 나를 재워놓고 밤 새 울었던, 지금도 생생한 그런 기억 외에는, 아버지는 자전거 뒤에다 어린 나를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주거나, 어떤 날은 조금 더 멀리 다녀오면서 나의 허전한 유년기에 많고 많은 추억을 저장해 주신 분이다. 지금에 와서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거나, 多方面으로 홀로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버지의 끼를 이어받았거나, 그 영향이 제일 많이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2 학년부터 당연 딸의 학습 걱정으로 늘 책을 읽으라는 강요를 했고... 어머니가 듣게끔 큰소리를 내면서 책을 읽어주는 것만이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으로 알았었다.
그런 식으로 학습의 기초가 전혀 다져지지 않는 나는 따라 갈 수 없는 학습에 포기를 해야 했던 그런 사연을 쌓아가는 가운데서 가족은 그저 내가 건강하게 잘 살아 주기만을 바라는 관심 속에서 청소년기를 지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두세 번 정도 가족의 애를 태우는 방황기도 보냈으나. 지금에 와서 그 ‘방황 기’를 생각해 보면... 사람의 됨됨이와 어떤 일에서건 옳고 그름의 판단을 가릴 줄 아는 혜안을 배우게 했던 기회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어지러운 사회, 복잡한 단체 내에서의 이해관계... 속에서도, 싫든 좋든 정해진 룰이 있으면 따라가 주는 美를 엿볼 수 있다. 일을 하다하다 내 일이 아니다 싶으면, 확실하게 물러난다. 그러나 이것이 내 일이다 싶으면, 나는 열정을 아끼지 않는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뒤에서 쳐져있는 쪽으로의 의견 수렴이 가슴에 와 닿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그런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 어차피 일이라는 것은 순리대로 진행 되어가게 되어있거나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또는 냉철한 객관적으로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어떠한 사건 하나를 두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일치가 되지 않는다 하여 내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설령 어긋난다 하더라도 누구의 잘 잘 못을 따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단지, 생각의 차이가 다를 뿐이다. 라는 생각을 해 봤음 한다.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고 나와 너의 생각이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쓴 소리가 아닌 다른 방법의 수단을 동원하여 한 순간에 사람이 사람을 내치는 일만큼 상처를 주는 일이 또 있을까. 누가 상처를 주고 누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도 서로의 입장에서 달리 생각해보면 누가 주는 건지, 누가 받는 건지... 처해진 입장에서 각자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말이다.
살면서, 한 번쯤 미쳐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나, 살면서 짧은 순간을 제대로 미쳐 한 군데 푸욱 빠져 본 적도 있다. 그 때는 미치려면 제대로 미쳐보라! 확실하게 미쳐봐야만... 나중에 후회와 미련이 없을 것이라는 식의 치중으로 기울었었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인생은 짧고... 짧은 만큼 소중하다는 것도 가슴 저리게 처음으로 체험했다. 미쳐보니 별 거 아니라는 결론을 교훈삼아 지금의 내 현실을 더욱 소중하게 가꾸어 보자고 하는데 온 마음 기울여서 정성스레 나란 사람을 이 세상에 내 놓으려 한다. 이 세상, 작은 나라에 벌어지는 소위 말 하는 이 바닥 세계가 다 그렇고 그렇듯이 함부로 몸과 마음을 굴려서는 절대로 설 곳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정신세계를 추구하면서 가다듬고 쓸고 닦는다.
사람이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제 각각이어서 색안경을 끼고 보면 한없이 다른 색으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마련이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직감으로 한 사람의 삶을 거짓으로 가식으로 몰아가면서 행복론 까지 운운하지 마라. 보이지 않는 것만이 다가 아니고, 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善이 숨겨져 있을 수 있고 보이는 곳에도 惡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이런 善과 惡이 공존하는 속에서 내가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은 절대로 슬픈 외로움이 아니다. 나는, 남들이 슬프다고 단정 짓는 외로움을 맘껏 즐기면서도 내 스스로 樂을 찾아내며 알차게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끝까지 살 것이다.
나는, 게으른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홀로 집을 나서 영화관으로 간다. 홀로 보는 영화감상의 맛을 아는 이상에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또, 어떤 날은 우두커니 있다가 그 날 그 날 기분에 따라 아무 버스나 집어타고 왕복을 하는 일도 종종 있다. 버스의 흔들림이 주는 편안함이 얼마나 안정감 있는지... 느껴 보았는가. 안정된 흔들림 속에서 내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앉은 것 같은 편안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그 기분을 모른다.
또... 어느 날은, 오늘의 노을이 멋지다 생각하면 노을이 제일 잘 보이는 곳으로 올라 상념에 젖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정해진 거리만큼 마치 노을을 움켜잡기라도 하듯이 미친 듯이 쫓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날은, 맛나다 싶게 풀어놓은 노을을 건져 올려 밥을 짓고 반찬을 하고 맛있는 저녁상을 준비하기도 한다.
또, 어느 날은... 반나절 이상을 도서관에 콕 쳐 박혀 꿈뻑꿈뻑 조는 날도 있고 또, 어느 날은... 서점에 들러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며 이 책 구경 저 책 구경을 하다가 얄밉게 얇은 책 한 권만을 사거나 빈손으로 서점을 나오는 날도 있다. 또, 어느 날은... 따로 생각해두었던 전시회나 공연의 스케줄에 맞추어 움직이기도 하고, 계획에도 없는 공연을 느닷없이 보러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단지, 이렇게 즐기는 나만의 樂은 가족에게 불편함을 주는 시간을 철저하게 피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 두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남편과의 잦은 언쟁도 겪었지만, 이제는 믿음이라는 진실을 서로 존중해주고 받으면서 이토록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으니 누구를 속이면서까지 묘한 실루엣으로 나를 가릴만한 이유도 없다.
나는 나와의 친분을 쌓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 서운한 것을 느끼거나 할 때도 그 사람에게는 말 하기 싫은 사정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마음먹는 것이 나도 편할 뿐 아니라, 그 사람도 편하게 해줘야 될 것 같아서... 개인적인 상황이 그럴만한 이유가 되겠거니 하고, 넘어가주는 것이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줄 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데 한 몫 톡톡히 한다는 것을... 이런 것이 사람과 사람 관계를 지켜주는 것이 확실하다.
"당신이 ~ 했으니까, 이 일이 더 중요해요? 그 일이 더 중요해요?"
절대로 캐묻지 않는다. 이런 캐물음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당신은, 친구를 더 사랑해요? 나를 더 사랑해요?"
라는 질문이 아닌 캐물음과 다를 바가 없다.
아주 특별할 정도의 사명감이 결여되어 있지 않거나 목숨 내걸지 않을 일이라면...
"아! 그랬어요!"
이 말 한 마디면, 더 이상 말 하지 않아도 모두 다 알 수 있으니까... 그런 믿음이 쌓여있으니까... 이런 인간관계 무척 편하다! 이런 인간관계... 편하면서도 가볍지 않으면서, 더불어 아주 묵직하고 서로 든든한 버팀목의 관계로 어떠한 일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이럴 때, 내 속의 이야기나 집안 이야기...? 톡톡 털어놓을 만한 진솔한 사이로 발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