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이정록

[이정록]부검뿐인 생

문선정 2007. 4. 17. 10:26

- 부검뿐인 생

 

* 이정록

 

 

터미널 뒤 곤달걀집에서

노란 부리를 내민 채 숨을 거둔

어린 병아리를 만났다 털을 뽑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맛소금을 찍을 수가 없었다

 

곡식 멍석에 달기똥 한 번 갈긴 적 없고

부지깽이 한 대 맞은 적 없는 착한 병아리,

언제부터 이 안에 웅크리고 있었을까

 

물 한 모금 마셔본 적 없는 눈망울이

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폐가의 우물 속 두레박처럼

그의 눈망울에 비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오랜 제자리를 에돌았는지, 병아리의

발가락과 눈꺼풀 위에 잔주름이 촘촘했다

하늘 한 번 우러러본 적 없는, 부검뿐인 생

 

금이간 창문에는, 그 줄기를 따라

작은 은박지 꽃이 붙여져 있었다

씨앗을 가질 수 잇다는 듯, 은박지 꽃잎들이

앞다투어 바래어 가고 있었다

 

 

 

***

   언젠가 이정록 시인이 말했다.

   "들여다보면 어디에든 시가 있지요."

   세상의 만물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를 언어로 묘사하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뜻이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하찮은 곤달걀도 들여다보면 시가 있다.

부화하지 못한 병아리를 묘사하는 화자의 마음속에는 착한 연민

이 웅크리고 있다. 연민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죽은

병아리의 눈망울도 또렷이 살려낸다. 병아리는 계란의 안쪽에 있고,

화자는 계란의 바깥쪽에 있다. 병아리는 사람을 내다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