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조용미

[조용미]별의 관문을 통과한 나무들은

문선정 2007. 3. 6. 13:08

별의 관문을 통과한 나무들은


조용미






  고흐의 그림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듯한 저 향나무는 절 마당의 요사채 앞에 홀로 높고 외로이 서 있다

초록 불꽃을 활활 하늘 높이 피워 올리는 실편백나무 위로 환하고 둥근 별이 초승달과 함께 일렁이고

  군청색 하늘 아래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는 밤의 구름과 편백나무 뒤로 숨은 듯 나지막한 푸른 산과 갈대들이 자라 있는 길 위를

  두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는,

  실편백나무가 잇는 별이 빛나는 밤


  저 나무는 향나무의 몸을 입고 있지만 실편백나무의 영혼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향나무는 나의 눈길을 태연한 척 받아들이지만 나는 거기 갈 때마다 나무를 의심한다

  나는 나무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자기 몸에 깃든 다른 나무의 영혼을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귀를 자르지 않고도 나무는 별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겠다

  고흐를 모르고서도 고흐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저 나무는




<시집 :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 문학과지성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