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정]착각에 대한 반성문
착각에 대한 반성문
문선정
잠시, 나라도 대신 울어 준다면 울던 울음을 뚝 그치게 하여 곤한 잠을 재우고 싶은 저 새의 이름이 뭐지? 이렇게 깊은 겨울에 뻐꾸기가 있을 리는 없고, 분명 어느 집 뻐꾸기시계에서 나는 소리일거라고 단정 지어 봤지만, 이건 아니다. 지난 늦가을부터 겨우 내 한날한시도 지치지 않고 울어대는 망가진 뻐꾸기 소리를 듣고 살 만큼 미련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어우러져 새소리는 더욱 구슬프게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에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어찌 들으면 어미 젖 떨어진 새끼 강아지의 깨갱거리는 울음소리와 흡사했다.
새도 어미와 떨어지면 저렇게 울어대는 거야? 옆에 있는 그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애처로운 마음에 가슴이 에여 오기까지 했는데, 내 스스로에게 가당치도 않은 인간적인 우월감에 인간적인 점수를 올려주기까지 했다. 우리 집과 바닥이나 벽을 붙이고 사는 이웃집에서 새장에 갇힌 새를 키우고 있는 것이리라 분명하게 단정 짓고는, 막연하게 옆집 사람이나 아래층 사람 두 집을 번갈아 가며 이웃에게 피해까지 주는 염치없는 인간으로 만드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새의 울음은 애절했다. 그 울음이 너무도 지친듯하여 엘리베이터 안에다 [새소리가 방해되어 잠까지 설치고 있습니다. 생활에 지장이 있으니 매일 울어대는 새를 어찌 할 방법은 없는지요?]라는 글을 써 붙일까도 생각해 보았고, 관리 사무실에 가서 방송을 부탁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애절히 우는 이름도 모르는 새소리에 우리는 민감해 졌다. 그렇지만 일단 집을 나서면 새소리는 까무룩 잊어버리는 탓에 두 가지 방법 다 생각으로만 그쳤다. 수개월 째, 소리의 최면에 걸린 우리는 한데 입을 모았다. 정말 너무해. 저렇게 울도록 주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혹시 죽지 않을 만큼 굶기는 거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인간도 아니야. 이건 동물학대야. 이런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지낼 만큼 새 소리는 우리 가족은 일상에서 깊은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어쩌다 친척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강아지만 보아도 인상을 쓰고 불끈 쥔 주먹으로 겁을 주던 그이도 어느 새 따뜻한 마음을 가진 동물 애호가라도 된 것 같았고, 우리는 새소리만 들으면 죽이 척척 맞았다. 저렇게 울어대는 새를 가두어 키우면 저 죄를 어찌 받으려고 저러는지 몰라. 그치? 새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동물이라 새장에 가두어 키우면 집안일도 되는 일이 없대. 집안이 시끄러운 일로 지지분 거린다는데 에효. 한숨까지 내 쉬면서 언젠가 언니에게 들었던 근거 없는 말까지 보태기까지 했다.
어쩌다가 저렇게 울다울다 지쳐 쓰러져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까지 우러난 나는 새를 갇혀 키우는 인간보다야 내가 훨씬 더 나은 존재라고 인정하는 태도마저 담겨있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 “나를 만나보지 않고 바람에 흘러 떠도는 소문만 듣고 오해를 했으니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가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내 꿈속으로까지 날아들어 와 못을 박는 분명한 이유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날도 애절하게 울음 우는 새소리를 측은히 여길 즈음 아들 녀석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내가 낮에 옥상에서 확인했는데 저 소리 새소리 아니야. 하하하 옥상에 있는 환풍기가 바람에 돌아가는 소리야. 아, 정말 어쩌면 저렇게 새소리와 똑 같지? 스스로 인간적인 존재라고 인정했던 우리는 녀석이 또박또박 말하는 소리에 순간 멍해졌다. 야, 십년이 넘도록 멀쩡하던 환풍기에서 늦가을부터 왜 갑자기 소리가 나니? 웃겨, 바람은 잠도 안자고 불어대는 거니? 분명, 새 소리라니까. 아니라니까, 환풍기가 녹이 슬어서 돌아가면서 삑삑 소리를 내는 거야. 어머나 어머머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어쩜 저렇게 새소리하고 똑 같을 수가 있니? 어쩜 저럴 수 있지? 그럼 뭐야. 삼사 개월 동안 우리는 저깟 소리에 최면이 걸려 옆집과 아래 층 사람들을 오해하면서 살았던 거야? 세상에 나는 있잖아, 저 새가 울다가 지쳐 쓰러져 죽을 줄 알았어.
그 죽음에 무심한 방관자가 될지언정 나는 저 새와 함께 슬픔을 같이 하고 싶었다. 새가 아니라서 다행인 것이 아니라 새일 거라고 정확하게 믿었던 생각에 피시식 바람기가 빠지는 건 또 뭐람. 나 원 참, 더 이상 새의 죽음에 궁금해 하지 않아도 슬픈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될 진대 서운한 마음까지 드는 건 또 뭐람.
분명 오해였다고 생각한 이 마당에, 세상에서 제일 복잡하고 민감한 대인관계를 생가하지 않을 수 없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저 추측만으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져 내 이웃을 오해하고 입술에 침을 바르며 산 것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온통 사막이 되어 모래바람이 인다.
사람 사는 일이 이렇구나 싶다.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의 발판에 올려놓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을 크고 자그마한 오해로 이랬네 저랬네 이러쿵저러쿵 너와 나의 입 살에 오르내리며 열심히 방아 찧은 일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나.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적마다 멀쩡한 이웃을 근거도 없이 오해 사는 일을 너무도 쉽게 하고 말았다. 우리 가족은 불쌍한 새라는 생각을 언제 했느냐는 듯이 잊어버릴 것이고, 녹 슨 환풍기 소리는 이제 새소리가 아닌 이상 무관심 속에서 소리 불감증으로 함께 살아갈 것이다. 환풍기 소리에 대한 착각은 나의 좁은 시각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言行을 꼬투리 잡아 오해로 몰아넣고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