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정]시 에세이_ 새와 나무
새와 나무
문선정
그녀의 진혼굿을 하던 날
까마귀 울음소리로 주변이 들썩거렸다
어떤 이는 죽어 새가 된다는데
전생에 새였던 사람이 다시 새가 되어
우리 가슴으로 들어와 살아간다는데
캄캄한 밀실에 갇힌 그녀의 차디찬 슬픔을 읊조리던 무녀는 진혼굿을 하다 말고
붉은 팥이 뿌려진 시루를 가리켰다
발자국이 보이지? 어두운 곳을 벗어나 날아올랐어
무녀의 말이 옳았다
죽어 새가 되었어도 엄마는 우리 엄마
그날 밤 꿈에 한 그루 늙어가는 나무 아래로 새 한 마리 걸어왔다
삐욧- 삐욧-
파란만장 끝에 배운 저 언어를 통역 할 수 없다
젖은 발로 길을 가르며 내게로 온 새
무덤과 여기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인간의 목소리로 그리운 얼굴을 부를 수 없어서
나무의 발등 아래 쌓인 눈물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새처럼 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현몽
렌지 위에 된장찌개를 바글바글 끓고, 누군가에게 대접할 단정한 밥상을 차려야 했다. 나는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오간데 없고 온통 초록의 산. 무성한 풀숲에 목이 긴 흰 새들이 무리무리 있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숲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중 한 마리가 긴 목을 움직이며 흘깃 이 쪽을 자꾸 바라본다. 분명 내가 찾는 그녀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팔을 길게 내밀어 휘저으며 이리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처음에는 작게… 조금 더 크게… 크게… 불렀으나, 그녀… 목소리를 잃었는지 그들의 무리 속에 섞여 내가 차린 밥상엔 동할 마음이 없는 듯 했다. 동그랗게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더 크게… 그녀를 향한 내 목소리는 울음으로 변했다. 울음의 위력이 놀라울 만큼 증대했는지 깊은 산으로까지 울려 퍼져 키 큰 나무들이 우렁우렁한 몸짓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 때였다. 가늘고 긴 다리를 내딛으며 새 한 마리 나를 향해 걸어온다. 가까워질수록 새가 아닌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람 같기도… 저기요… 혹시… 엄마? 엄마가… 아니, 새가… 엄마가, 눈물로 범벅된 내 얼굴을 닦아주고 내게 새 옷을 입혀주고는 양 날개를 편 다정한 몸짓으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이렇듯 말랑하고 따뜻한 가슴의 촉감이 얼마만인가. 긴 세월 느껴보지 못했던 가장 아늑하고 편안한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문득 나를 안아준 새가 엄마라는 확실한 느낌을 받았을 때 기쁨과 불안이 함께 밀려들었다. 고개를 들어 새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분명 꿈밖으로 밀려날 것 같았기에 조용히 흐느끼며 가만히 있어야 했다. 보드라운 그 장면 속 끄트머리에라도 꽁꽁 묶여 오랜 시간 함께이고 싶었기에,
불안은 터무니없이 완고했다.
꿈밖으로 밀려나온 나는 침대 위에 덩그러니 남겨져 울먹거리고 있었다. 투명한 내실이 훤히 보이는 푸른 초원 같은 그녀의 영토로 다시 들어가기엔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선명한 그림처럼 창가에 달라붙는 시간이었다. 꿈과 현실의 장력을 견디다 못해 억지로 끌려나온 것이 억울해서라기보다, 쌓였던 그리움이 한순간에 터져버렸는지 이미 젖어버린 베개를 껴안고 나는 큰 소리로 눈물을 쏟아냈다.
역시, 엄마는 새가 되었다. 영영 나로부터 떠나, 목이 길고 우유 빛처럼 흰 새로 환생 되어 침엽수와 활엽수가 얼크러진 저 산골짜기 저 푸른 초원에서 또 다른 일가를 세우고 옹기종기 무리 지어 살아가고 있었다. 파르르 날개를 펼치고 허기와 포만을 사냥하며 살아내는 그곳의 생 또한 여기와 별반 다르진 않을 텐데 말이다.
어느 날.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엄마의 새 영토까지 다녀왔는지 모르겠지만 비록 꿈이었을망정 그 짧은 조우는, 20여 년 동안 차곡이 쌓인 내 그리움의 습기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저 세상에서 배려해 준 현몽이었을지 모른다.
헐렁한 바람만이 드나드는 마당가를 서성일 때 햇살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부모 없는 내 쓸쓸함이 한없이 가여워질 때 있다. 종일토록 새의 울음소리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는 날, 까만 밤. 다시금 그녀의 영토에 다녀올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