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김기화

[김기화] 행주 외5편

문선정 2017. 8. 3. 14:27

 

 

 

 

 

 

 

 

행주 /김기화

 

 

날마다 남의 일을 훔치는 일

누군가의 족적을 닦으며 젖어드는 일

마른 생이 촉촉하게 살아나는 일이야

젖은 몸 툭툭 내다널면 그 뿐

한 겹 네모로 곧게 일어서는 일이지

푹푹 행주를 삶아대던 엄마를 닮아가고 있어

삶의 엉덩이만 쓸고 닦다가

국화꽃 하얀 얼굴로 돌아온 당신

비로소 내 몸을 부리고 있네

매운 손맛의 붉은 얼룩을 따라

뚝뚝 육신을 짜내야만 했던 세월

시린 손 끝 마를 새 없이

엄마의 마지막 지문을 지우던 날

햇살 아래 얼굴 한 조각 해쓱하게 걸렸네

잠시 눈부셨던 엄마의 대륙이지

한 지붕 한 이불 속을 빠져나간

당신은 하늘에 살고

나는 붉은 노을로 지고

마디마디 손길 닿은 곳마다

두고 간 일감이 비늘로 쌓이고 있어

주무시나요?

네모난 액자 너머로 더 이상 늙지 않는

내 엄마를 훔치는 일

 

ㅡㅡㅡ

 

 

재봉틀 단상/ 김기화

 

 

엄마는 노루발이었네

시커먼 무쇠다리로

네모진 목관을 이고 살았네

일할 때만 뚜껑을 열고 나왔네

 

자근자근 사슬코를 만드는

돌림 바퀴 음계에 따라

매운 시절 촘촘히 빠져나갔네

별별이 기워낸 누비이불

그 속에 들어앉은 오롯한 식구들

당신은 시리디시린 관절을 앓고 앓았네

 

윗실이 아랫실 땀수로 조절하고

노루발로 걸어온 굽잇길

마디마디 색실 걸어

하얀 별빛으로 마름질했네

 

쿨렁쿠욱 헛도는 굴림판위

헐거워진 뼈마디에 물이 고였네

통증으로 오그라든 핏줄에 맞춰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린 살점들

몸 누인 그곳에서 새우잠을 잤네

 

이음새가 닳아 가릉거릴 때

풀린 실타래 끌어안으려는듯

낡은 널 속으로 자꾸 몸을 마는 당신

앙상한 노루발로 잠들어 있네

 

 

ㅡㅡㅡ

 

 

독백 / 김기화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늘어났다

아침에 눈을 떠 창문을 열면서부터 나는 없다

곁에 공존하는 것들과 날마다 수다스러워진다

대상은 늘 옮겨 다니며 말을 건넨다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라고 또 중얼거린다

안부인 듯 폐부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묻어온 푸른 안부를 마중하여

또 중얼거린다, 천국이 거기 있다고

또 하루 나를 읽어내는 건 바깥이라고

간밤을 털어내며 내 안의 기지개를 켠다

여러 개의 나를 들여다보며 물레질을 한다

계절이 바뀌는 반추의 시간이라 하자

늘 함께 하면서 또 혼자인 시간들

길 위에서 나를 묻고 나를 대답하는 것이다

아침의 경전에 고해성사가 차려진다

또 혼자 중걸거린다, 함께 가는 몸부림으로

물레야 물레야 제 몸을 돌아치는 물레야

 

 

ㅡㅡㅡ

 

 

내간체를 쓰다 / 김기화

 

 

그녀는 내 목구멍으로 들어와 내재율로 사네

숲을 보지 못하는 나무를 바다에 심어놓고

스스로 흘러 뿌리를 뻗으라 하네

구멍구멍 온몸을 잠가놓은 꼭지마다

그녀가 부려놓은 운율이 무음으로 오네

목젖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는

입을 다물면서부터 내면의 고행이 시작되지

어쩌다 생의 모퉁이에서 큰소리가 필요할 때면

돛을 올려 배를 쓸어주는 굴곡의 바다

배를 움켜쥔 채 나뒹구는 파고를 보네

넓은 수평선을 보지 못하는 낮은음자리표는

제 몸속의 혈자리를 그려내는 구족화가처럼

살갖이라는 차단벽을 돌기를 그리지

바껕 통로를 채색하는 지느러미의 유영 위로

가끔씩 짠물을 끼얹는 고래를 기억하네

풍랑의 문장을 영접하는 뱃머리에서

때때로 목의 가시를 토하려 하자

아랫배 깊이 더 파고드는 그녀의 음역들

역류할 수 없는 멀미로 출렁이네

여전히 그녀는 내 목구멍 안에 내간체로 사네

 

 

ㅡㅡㅡ

 

 

공동주택 / 김기화

 

 

오늘도 딱딱한 등을 보이며 갔다 복도가 꺾인 자리에서 벽이라는 입속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공동주택이라는 지분의 현관은 늘 자동문으로 굳게 닫혀있다 문패가 사라진 현관은 늘 자동문으로 굳게 닫혀있다 문패가 사라진 몇 동 몇 호라는 소유권자들의 이름은 숫자놀음의 덫에 걸려있다 그 덫에서 어느 누구도 소유권을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사람은 없다 분양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취득할 수 있는 편입의 프리미엄인 셈이다 오그라든 심장을 펼쳐보려는 응달의 사람들에게 입주절차는 하늘의 별이었다 대기자 명단에서 줄줄이 낙오된 눈빛들은 건기에 든 사막의 눈빛이 되었다 통로 전용의 엘리베이터는 거북이 등 같은 껄끄러운 부산물이 된 지 오래다 비껴가는 외면 속에서 침묵의 잔상을 들여다본다 자벌레처럼 눈금으로 거리를 읽다가 스스로 세상 한구석에 편입된 자신을 발견했다 갈까 말까 할까 말까를 되풀이 되풀이하며 세상을 여닫다가 공동체라는 우리로 전락하는 타협을 읽는다 거북이 등껍질은 여전히 딱딱했고 철근을 빼낼수 없는 그들은 서로 닮은 등각으로 서 있다 같은 통로 위층 어느 집에서 운명교향곡 같은 세탁물이 퍼붓듯 쏟아지고 있다 콸, 콸, 꽐

 

 

ㅡㅡㅡ

 

시집을 짓다 / 김기화

 

 

시인께, 라는 두 글자에 겸허해진 오후

밭고랑에서 호미질 하던 그녀는

한 걸음에 시인이 된다

흙살 속에 부려놓은 씨알 같은 활자들이

바탕체의 곧은 이랑에서 물꼬를 찾는다

거울 앞에 앉아 머리 손질을 하고

바람이 먼저 다녀간 말없음표가 즐비하다

집안에는 피돌기 바퀴라도 달려있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녀가 들락거렸다

아리아리 송송송 잔상으로 차려진

저 집은 들출수록 맛이 나는 것이다

수다스런 햇살이 빗금처럼 걸려있는 창

어금니로 꾹 눌러놓은 듯

마침표처럼 소박한 시집에 들어있다가

첩첩산중 계곡으로 더 들어가 보기로 한다

해질녘 노을은 뒤목붖더 뻐근한데

온기를 찾아든 집시들이 눈동자가 붉은 저녁

시집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녀가

서둘러 옷소매를 걷어붙인다

오후 여섯 시 예약된 밥솥 압력추가 흔들린다

시집 밖에서 부르는 소리

시집 안에서 깨어나는 젖은 소리

 

 

 

김기화 시집. <아메바의 춤> / 시에시선. 2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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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시인의 첫시집이 나왔다.

 

술잔을 높이 들어 거나한 취기로 축하의 말을 막 쏟아내고 부둥켜 안고 눈물도 기쁘게 쏟아내고 싶은데.. 아쉽게도 내가 술을 못해 식사와 차에 수다를 얹어 많은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했다.

 

"손수 시집을 데리고 와주신 기화샘~~~감사해요~ ^^

부둥켜안고 있던 자식 시집 보내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27일. 목요일에는 술에 취한듯 흥얼거리는 꽃다발을 품고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