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천수호

[천수호]와서 가져가라

문선정 2015. 12. 17. 01:09

와서 가져가라


천수호




은행잎의 대열은 쉬베게 흩어지지 않는다


바람이 다녀갔다는 전갈만 칼날처럼 목에 닿았다


낮게 날던 참새떼가 모처럼 높게 앉았다 간다


3층 카페에선 누군가가 따뜻한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며

시선만으로 은행잎을 건드렸다가 거둬간다


찬 서리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낱낱의 방패들


어쩔 수 없이 왔으면 가는 거라고

한 죽음을 애도하던 낮은 위로의 목소리가

휘파람처럼 지나갔다


칼날 눈빛으로 자주 은행잎을 썰던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따라가고 싶다고 말하려다가

좁쌀 소갈머리 같은 목숨에게 배짱을 보린다


와서 가져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