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김백겸
[김백겸]전등
문선정
2011. 7. 7. 22:12
전등
김백겸
캄캄한 방에 불을 켰다
가구며 벽지 색깔, 시계의 시침까지 갑자기 나타났다
백 와트 전등이었더라면
그 불빛은 맞은 편 아파트에 사는 마음에게까지
혹은 야간비행을 하는 헬리콥터 조종사의 우연한 눈에까지
닿았으리라
내 목숨이 누구인가 스위치를 켠 전등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목숨은 밝게 빛나는 백만 와트 전등이고자 했다
몇 억 광년 저편의 은하도 볼 수 있도록
내 사랑의 생각들이 아주 먼 시간 후에라도 도착하도록
어떤 답신과 메일들이 내 운명에 도착했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맞은편 아파트 방에서 불이 꺼졌다
죽음처럼 고요한
구름이 와서 별이 없는 밤 같은 관계의 침묵
빛으로서 말씀을 주고받았던 악기들의 대화가 그친 공연장은
갑자기 관객이 없는 겨울바다가 되었다
긴 밤이 되고 긴 어둠이 되리라
나비떼 같은 기억과 환상만 밀물과 썰물처럼 분주하리라
내 목숨은 감시카메라 탐조등처럼 아파트 숲을 쳐다보고 있으리라
칠흙같은 마야의 바다에서
새벽 햇빛이 산봉우리를 전등처럼 발화시킬 때까지
김백겸
1953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비밀정원』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