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천양희

[천양희]시인이 시인에게

문선정 2011. 4. 16. 22:19

 

시인이 시인에게

 

 

                        천양희

 

 

시인으로 사는 삶의 고통을

백지의 공포라고 말한 시인에게

소외가 길을 만드는지

햇살 속으로 망명하고 싶다던 시인에게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던 시인에게

운명을 걸지 않았다면 돈도 밥도 안되는 시에

순정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라던 시인에게

멱라수에 빠져 죽은

굴원의 굴욕을 생각한다던 시인에게

모래를 게으른 평화라고 말하던 시인에게

먼 눈송이와 가까운 눈송이가 폭설을 이룬다던 시인에게

조용한 일이 고마운 일이라던 시인에게

잠들기 전에 다소간의 눈물을 흘린다던 시인에게

고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므로 위대하다던 시인에게

 

 

나는 쓴다

울분을 함께 나눠가지면 안되겠습니까?

 

 

천양희 시집 :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 창비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