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마경덕

[마경덕]계란 프라이

문선정 2010. 11. 4. 01:05

 

 

     

詩가 있는 풍경

 

 - 계란 프라이

 

 

                                                                   마경덕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면 병아리고 누군가 껍질을 깨주면 프라이야,
  남자의 말에 나는 삐약삐약 웃었다. 나는 철딱서니 없는 병아리였다.


  그 햇병아리를 녀석이 걷어찼다. 그때 걷어차인 자리가 아파 가끔 잠을 설친다. 자다 깨어 날계란으로 멍든 자리를 문지른다. 분명 녀석의 발길질에 내 껍질이 깨졌다. 그러니까, 나는 프라이가 된 셈이다. 팬에 놓인 것처럼 심장이 뜨거웠고 소금 뿌린 자리가 쓰라렸다.


  그와 헤어진 후 또 한 개의 흉터를 얻었다. 자라목에 두꺼운 안경을 낀 말대가리 녀석, 맞선에서 몇 번이나 차였는지 상처투성이였다. 그래 어디를 걷어 차줄까, 잠깐 방심하는 사이, 눈치 빠른 녀석이 먼저 박차고 일어섰다. 얼떨결에 나는 쩍 금이 갔다.


  헛발질에도 쉽게 깨지던, 계란으로 바위 치던 시절, 사랑은 내게 넘치거나 못 미쳤다. 번번이 달궈진 팬에 왈칵 쏟아졌다. 나는 한 번도 껍질을 깨지 못했다.


 

 

- 시 읽기 - 

 

위트가 있는 시인의 戀愛談이다. 계란의 이미지를 들어 사랑에 대한 자신의 편력을 구체적 체험진술과 자의와 타의에 의한 대비로 일관성 있게 풀어내고 있다.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면 병아리고 누군가 껍질을 깨주면 프라이야’라는 남자의 말에 철딱서니 없이 순진하게 웃었던 시절에는 사랑에 대한 바램과 열정 때문에 달구어진 팬에 놓인 듯 심장이 뜨겁고 소금 뿌린 자리가 쓰라렸던 경험이었고, 헛발질에도 쉽게 깨지던 성장기에는 늘 넘치거나 모자라는 상대를 만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해학적인 고백의 행간에서 시인의 순연(純然)한 사랑관이 읽혀지는 것 또한 시의 맛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 의해 깨지고 구워지는 계란프라이가 아니라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스스로… 아니, 저절로 가슴을 활짝 열어지는 순연한 사랑은 어디로부터 어떻게 오는 것일까?
에로스(eros)·아가페(agape)·필리아(philia)적 요소를 모두 포함한 성숙된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기인한 인간의 원초적인 갈등이 없어지는 것일까?
어쩌면 사랑의 정의는 우리가 사는 동안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유 진 /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2009년 8월 19일자 서울일보 / 시가 있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