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권혁웅

[권혁웅]마징가 계보학

문선정 2010. 2. 12. 00:58

- 마징가 계보학

 

 

                                                             권혁웅

 

 

 

   1. 마징가 Z

 

   기운 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

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

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2. 그레이트 마징가

 

   어느날 천하장사가 흠씬 얻어맞았다 아내와 가재를 번

갈아  두들겨 패는  소란을 참다못해 옆집 남자가 나섰던

것이다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였는데,  오방떡 만드

는 무쇠틀로  천하장사의  얼굴에 타원형 무늬를 여럿 새

겨넣었다고  한다 오방떡  기계로 계란빵도  만든다 그가

옆집의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짱가

 

   위대한 그 이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가 오후에 나

가서 한밤에 돌아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밤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오더니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

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일이 사내

의 집에서가 아니라 먼 산 너머에서 생겼다는 게 문제였

다 사내는 오방떡 장사를 때려치우고, 엄청난 기운으로,

여자를 찾아다녔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

 

 

 

   4. 그랜다이저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

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역마(驛馬)가 있었다면 여자에

게는 도화(桃花)가 있었다 말 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

하기를 바란다

 

 

 

 

권혁웅 시집 / 마징가 계보학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