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좋은 수필 읽기

[구자인혜]물에 만 밥

문선정 2009. 12. 3. 11:46

   - 물에 만 밥

 

 

                                                                                                                                                             구자인혜

 

 

 

 

   휴가 첫 날이다. 달억씨와 아내는 갑자기 찾아온 텅 빈 시간이 혼란스러웠다. 늘 무언가 계획하고, 어딘가 전화하고,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부부였다. 할 일 없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집에서 하릴없이 이리저리 뒹구는 것은 익숙치 않은 부부였다. 하지만 남들처럼 휴가를 즐길 수 없었다. 쌍용자동차 노조가 본격적인 농성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을 먹으려 식탁에 앉았다. 군에 간 아들이 없으니 식구들이라야 달억 씨 부부와 딸아이가 전부였다. 세 식구가 동그마니 앉아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달억 씨는 갑자기 식탁의 비어 있는 자리가 무척 썰렁하게 느껴젔다. 휑한 바람소리가, 이가 뭉텅 빠져 버린 듯한 허전함이,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외로움이 가슴 가득 밀려왔다. 비어 있는 자리는 자신을 믿고 사랑해 주던 아버지와 어머니, 자신을 닮아 축구와 테니스 등 운동을 좋아하던 아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형제들과 조카들의 자리였다. 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제 누이들도 왕래가 뜸해지더니 명절 때나 만나는 사람들이 되었다.

   자주 만나던 얼굴들이 하나 둘 시야에서 멀어져 갈 대마다 달억 씨는 자신의 존재감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달억 씨의 아내는 오라는 곳도 갈 곳도 많은 눈치였다. 예전에는 달억 씨에게 질세라 목소리를 높이며 옳고 그름을 따지던 아내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달억 씨의 말이 맞다며 꼬리를 내렸다. 아내가 자신의 주장을 버리니 주도권이 모두 달억 씨에게 오는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자신은 점점 왜소해지고 아내가 커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내의 관심사는 달억 씨를 떠나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럴수록 달억씨는 일에 몰두했다. 평상시보다 큰 목소리로 집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아내와 딸에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회사 직원들은 휴가 때 가족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달억 씨는 "휴간데 뭐 할까?" 물었다. 아내는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갈까. 오늘부터 경찰까지 투입된다고 하던데, 별일 없겠지… .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달억 씨는 늦은 아침을 먹고 평택시로 차를 몰았다. 의경인 아들이 소속된 경찰서로 향했다. 커다란 경찰서 건물 뒤로 회색빛 이층 건물이 초라했다. 앞 건물의 그림자인 양 그늘지고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건물은 텅 비어 있었다. 중대원 모두 시위를 막으러 출동했다고 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공장은 20Km를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초행길이어선지 멀게만 느껴졌다.

   출입구는 모두 차단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농성자와 가족들, 기자들,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경찰들과 의경들, 인산인해였다. 공중에서는 헬기가 두두두 소리를 내며 무언가 아래로 집어던졌다. 한 쪽에서는 경찰이 농성자를 구타한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달억 씨와 아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보았다. 해고된 사람들과 가족들, 출근하려는 사람들, 농성을 제지하는 사람들, 취재진들, 모두 동시대 사람들이었다. 역사를 함께 쓰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라는 카테고리로 묶여진 사람들이었다.

   달억 씨는 아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졌다. 8월의 뙤약볕에 둔중한 방독면과 방패를 들고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아들들, 눈부신 젊음이 몸속 어딘가로 깊게 침잠해 버린 수물두 살 젊은이들, 그들이 인간 철조망이 되어 겹겹이 서 있는 모습은 달억 씨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휴가 인파로 막힌 도로 체중보다 더 무거운 체중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소문난 맛집에서 식사를 하려던 마음은 사그러졌다. 저녁 식탁에는 찬 밥과 밑반찬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달억 씨는 찬밥에 물을 말았다.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우적 씹었다. 전화벨일 울린 것은 그 때였다.

   "아버지, 여기 오셨었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볼트, 드라이버가 장난 아니게 날아오지만, 언제 또 그런 것으로 맞아보겠어요. 시위만 끝나면 3박 4일자리 특박 보내준대요. 하하하… ." 아들의 웃음소리가 긴 여운으로 남았다. 목소리가 더 굵어진 듯도 했다. 아들은 세상을 몸과 마음으로 만나는 중인 것 같닸다. 달억 씨는 갑자기 식욕이 돌며 물에 만 찬밥이 이제껏 먹어 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